두 선수 모두 법정에선 무죄, 쿠퍼스타운에선 '영원한 죄인'
클레멘스, 약물 관련 6개 혐의 모두 무죄이지만 '낙인 효과'
로즈, 도박 기소 없이 영구제명…사후 복권은 '지연된 정의'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가 여전히 풀지 못한 난제 두 개가 있다. 하나는 금지약물 의혹의 로저 클레멘스, 또 하나는 도박으로 영구 제명까지 갔던 피트 로즈 문제다. 두 사람의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는 단순한 도덕 논쟁을 넘어 '스포츠가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은 어디까지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법정에서는 무죄, 야구에서는 유죄?
클레멘스는 2012년 위증 및 의회 기만 혐의로 기소됐다가 6개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정에선 '유죄 입증 실패'로 혐의를 벗었지만, 야구계와 여론은 그를 여전히 약물 시대의 상징적 인물로 낙인찍었다.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 10년 투표를 모두 소진하고도 명예의전당 입성을 이루지 못한 그는 8일(한국시간) 위원회 투표에서도 탈락했다.

물론 클레멘스는 모든 의혹이 깨끗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그가 무죄가 된 것은 일관되게 약물 복용 의혹을 부인하는 과정에서 기소된 '위증과 의회 기만' 혐의에 대해서다. 배심원단은 그의 증언이 위증이냐를 따진 것이지, 그가 약물을 복용했는가를 판정한 것은 아니었다.
로즈의 경우는 비슷하지만 결이 다르다. 그는 역대 최다 안타 기록 보유자이자 누구보다 성실했던 선수로 기억된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약물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의 팀 승패가 아닌 승리에 돈을 건 게 적발되면서 1989년 영구 제명이라는 야구계의 '사형선고'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기자단 투표의 문턱에 서보지도 못한 채 수십 년 동안 쿠퍼스타운 문밖에 묶여 있다.
◆ '기소'와 '낙인'의 비대칭
클레멘스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형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아도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배심원들은 "그가 약물을 썼다"고 판결한 적이 없지만, 메이저리그 팬덤은 '미첼 리포트에 이름이 올랐던 선수'라는 이미지를 주홍글씨럼 씌워두고 있다.

로즈는 세금 문제는 있었지만 도박으로 기소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 차원의 영구 제명을 받았다. 팬덤 일부에선 그의 죄를 '범죄'가 아니라 야구에 지나치게 집착한 사람이 저지른 '치명적 실수' 정도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영구제명이라는 행정 처분 자체가 명예의 전당 논의에서 절대적인 벽으로 기능해 왔다.
문제는 이 두 사례 모두에서 '법이 요구하는 증명 수준'과 '야구계가 요구하는 도덕적 순결'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형사재판에서조차 유죄를 입증하지 못한 혐의를 가지고, 스포츠계는 사실상 영구적인 형벌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 사후 복권은 '지연된 정의'
지난 5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로즈의 영구 제명을 공식 철회하고, 명예의 전당 후보 자격을 회복시킨 것은 상징성이 크다. 그러나 그 결정이 내려진 시점은 로즈의 사망 이후 8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생전 그가 "죽은 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호소했던 장면을 떠올리면 그의 복권은 '지연된 면죄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생전에 모든 비난을 감당하게 만든 뒤, 사망 후 여론이 잠잠해지면 그때서야 업적만 골라내 기리는 방식이다. 사후 복권과 헌액은 당사자가 누려야 할 자긍심과 사회적 복권의 의미를 상당 부분 앗아간다.

메이저리그가 약물과 도박 혐의에 부과하는 형벌은 유독 가혹해 보인다. 명예의 전당이 '역사와 기록의 박물관'이 아니라 '도덕적 성인(聖人)을 추려 올리는 성자 명부'에 가까운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약물과 도박은 분명 야구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위반 행위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제재는 출전 정지, 실질적 징계, 유죄 판결과 형 집행 등 현행 제도 안에서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영원히 쿠퍼스타운에서 이름을 지우는 것까지 요구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 스포츠계의 오랜 강박 관념을 버려야 할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클레멘스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며 당시 오바마 행정부의 기소를 "부당한 사법권 남용"으로 규정한 것도 결국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정치적 이해가 개입된 메시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형사적으로 무죄인 사람을 언제까지 상징적 죄인으로 남겨둘 것이냐"는 문제 제기 자체는 야구계가 외면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로즈의 사후 복권과 클레멘스의 반복된 탈락은 명예의 전당이 '실력과 기록을 기리는 공간'이 아니라 '도덕적 심판의 4심 법정'으로 착각하면서 세월만 흘려보낸 결과로 보인다.
클레멘스와 로즈의 이름은 언젠가 쿠퍼스타운의 동판에 새겨질 지 모른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이 언제 올라가느냐 여부보다 그 과정에서 메이저리그가 어떤 기준과 철학을 선택했느냐일 것이다. 지금과 같은 모순된 잣대를 그대로 두고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것은 두 사람에게도, 야구라는 스포츠에도 전혀 공정하지 않다.
zangpab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