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와 살리에리

2025-02-27

살리에리(그림)는 모차르트를 독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어린 슈베르트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줘 가며 공짜 레슨을 베풀기도 했던 선량한 이탈리아 아저씨였다. 물론 모차르트를 시기했고, 가끔 훼방을 놓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라. 여러분이 만일 ‘올 타임 넘버 원’인 모차르트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라면, 샘내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살리에리의 모차르트 독살설은 사실 독일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고 자국 예술가들을 신화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낭설일 뿐이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이 낭설이 문학의 힘에 의해 증폭되었다.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이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1832)를 쓴 것이다. 불과 열 쪽짜리, 이 짧은 작품은 그러나 근대 사회의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들추어낸다. 곧 근면한 ‘둔재’와 그의 근면을 일순간 무로 돌려버리는 천재 사이의 갈등이다. 이 이야기에서 모차르트는 자신의 불멸의 명작을 선술집 노인 악사에게 아무렇게나 연주시킬 만큼 자기 예술의 가치를 모른다. 겸손일까. 그런 재능을 눈물겹게 소망하는 살리에리에게 그것은 씻을 수 없는 모욕이다.

서구 시민사회는 근면과 성실, 누구나 일한 대로 돌려받는다는 평등의 가치 위에 세워졌다. 그런데 둔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천재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어떻겠는가. 이것이 둔재가 겪는 갈등이다. 그러나 둔재들이 천재를 소외·배제시킨다면 이 또한 부조리하며 이것이 흔히 사회 일반의 몰이해를 겪는 천재의 갈등이다.

이 이야기는 과도한 경쟁과 2등 콤플렉스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중요한 이슈다. 열심히 하는 둔재나 하늘이 내린 천재를 돕는 방법은 각각 다를 수 있다. 평범성과 천재성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 우리는 먼저 능력주의라는 우상을 깨뜨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의 부지런함, 나의 천재성은 모두 내 것이 아니다. 내 주위를 널리 이롭게 하라는 더 큰 뜻 아래 있다.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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