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둘러싼 논란과 균열이 미국 보수 정치권 내부로 옮겨붙고 있다. 조율되지 않은 대대적 연방정부 구조조정으로 머스크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고위관료들이 충돌한 데 이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의 주도권을 둘러싼 전통적 트럼프 지지층과의 반목도 불거지는 모양새다.
뉴욕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최근 머스크를 향한 공격 수위를 높이며 트럼프 정권 내부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배넌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내각 회의에서 머스크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언쟁을 벌였다는 보도가 나온 후 자신의 팟캐스트 ‘워룸’에서 머스크가 트럼프 대통령을 짓누르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는 “(머스크가 트럼프 대통령을 옭아매는) 닻이나 자석이라 보진 않는다”면서도 “아직 아니지만 추세가 되고 있다.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극우 성향의 정치 전략가이자 마가의 설계자로 알려진 배넌은 이민 정책 등을 두고 머스크와 공개적으로 갈등을 벌여왔다. 최근까지도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기생충 같은 불법 이민자” “정말 사악한 인간” 등의 날 선 표현으로 머스크를 공격해왔다.
배넌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불리며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맡기도 했으나, 1년도 안 돼 눈 밖에 나면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배넌은) 해고됐을 때 직장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놓은 모양”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후 극우 성향 매체와 팟캐스트에서 지지층을 끌어모으면서 공화당 내 영향력을 회복했고,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한 후 ‘부정선거론’을 주창하며 다시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

이들의 반목은 머스크를 필두로 한 신진 보수 세력과 마가를 기획·확립한 전통적 지지층 간의 갈등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예산 삭감 및 인력 감축’이라는 초월적 권한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안보·외교·복지 등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머스크에게 기존 보수층의 따가운 눈길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머스크식 행정은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도 충돌을 빚고 있다.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임시내각 회의에서 머스크와 루비오 장관이 말다툼을 벌였다고 NYT가 보도했다. 머스크는 국무부가 인원 감축에 소극적이라며 “아무 ‘해고 실적’이 없다” “유일한 해고자는 DOGE 파견 직원일 것”이라고 비꼬았고, 이에 루비오 장관은 “1500명의 조기 퇴직자는 해고가 아닌가” “‘해고 쇼’를 벌일 목적으로 이들을 다시 고용하길 바라나”라고 되받았다.
숀 더피 교통부 장관도 머스크 팀이 항공교통 관제사를 해고하려 한다며 “다수의 항공기 추돌 사고를 다루는데 관제사를 해고하라고 하나”라고 항의했고 머스크는 “거짓말”이라고 대꾸했다. 더그 콜린스 보훈장관도 무차별적 해고가 이뤄져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배넌과 머스크의 갈등에 대해 “발생하거나 발생하지 않은 사적인 대화에 대해 논평하지 않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머스크와 DOGE의 업적에 감동했으며, 연방 정부의 낭비·사기·남용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머스크, 루비오 장관과 함께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사저에서 식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머스크와 루비오는 아주 훌륭한 관계다. 이 외의 모든 주장은 가짜 뉴스”라고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