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호상입니다

2024-12-17

삼가 축하합니다. 자식들 어깨에서 새들이 날고 있네요. 문상객들도 새 한 마리씩 데리고 밝은 조문을 오네요

요양병원 다섯 해 동안 가족들 수시로 응급으로 불러들였지요. 막상 오늘 새벽엔 아무도 없이 떠나셨지만,

삼가 호상입니다. 팔랑개비처럼 장례식장을 뛰어다니는 어르신 손자의 딸이 사람들 눈에서 웃음꽃으로 피네요

어르신, 속상해하지 마세요. 어떤 죽음은 그리운 슬픔이고, 다른 어떤 죽음은 누군가의 평안이 되기도 하네요

새우젓 얹은 돼지 수육을 씹고, 시뻘건 육개장까지 잘 먹고 갑니다. 저마다 호상이라 하니, 뒤도 돌아보지 마세요

배부른 저녁 자기 몫의 구두를 찾아 신고 나서는, 우리의 뒷모습은 어르신의 어제였지요. 증손녀가 인사하네요

빠이빠이,

삼가 팔랑거리는 조의를 제 뒤통수 향해 미리 보내 주고 있네요

◇모현숙= ‘조선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대구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 시공간 동인. 시집 ‘바람자루엔 바람이 없다’가 있음.

<해설> 손 뻗으면 곁에 있던 호흡이 홀연히 없어지는 일은 슬픈 것이다. 하물며 핏줄이면 오죽하겠는가? 호상이란 없다. 따지고 보면 태어나는 것도, 슬픈 일인데 떠나는 것은, 떠나보내는 것은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호상입니다”라는 말은 역설이다. 그나마 문상객들은 편안한 죽음을 두고 앵무새처럼 지껄일 뿐이다. 요양병원 다섯 해 동안 가족들 수시로 응급으로 불러들인 것 같은데 달리 생각해보면 그는 삶에 애증이 많았던 사람일 수도 있다. 시뻘건 육개장이 그렇고 체할까, 새우젓을 곁들여 먹는다는 표현 또한 극도의 슬픔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후반부의 증손녀가 인사가 빠이빠이, 삼가 팔랑거리는 조의를 제 뒤통수 향해 미리 보내 주고 있음이 바로 호상의 의미를 후려치고 있다. 시간이 지나 어느 순간 망자인 그가 곁에 없음을 알 때 호상이 아니었음을 가슴으로 알게 되리라.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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