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작품상 후보군]
(10)니클보이즈
깊숙이 자리한 인종차별에 경종
마틴 루터 킹 목사 메시지 전달
잔혹함보다 빛나는 인간미 집중
퓰리처 수상 '니클보이즈' 원작
은폐되었던 비밀 무덤 실화 바탕
드론 촬영 교도소 공포감 압도적
1900년 설립된 미국 최대의 감화원인 플로리다 도지어 소년원은 학생들에게 상습적 폭력과 성적 학대를 저지른 잔혹 행위로 악명 높은 곳이다.
학교, 공원, 식당 등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했던 인종차별법이 극치를 이루던 1950년대, 감화원 교도관들은 학대, 구타, 강간, 고문 심지어 살인까지 저질렀다.
2000년대 들어 이곳을 거쳐 간 피해자들의 증언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끔찍했던 참상이 드러났고 111년 만에 폐쇄됐다.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쓰인 소설이, 콜슨 화이트헤드의 2020년 퓰리처상 수상작 ‘니클 보이즈’다. 생생한 리얼리티에, 드물게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나온 소설이 라멜 로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다.
1960년대 플로리다 남부 텔러해시 소재의 니클 소년원. 낡은 시설의 작업장과 쓰레기장 사이에서 43구의 유골이 발견된다. 처참하게 깨어진 두개골, 으스러진 갈비뼈, 부러진 손목뼈가 지옥을 연상시킨다. 비밀 무덤에 오랫동안 은폐되었던 이야기들이 세상에 드러난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뉴욕에 거주하는 엘우드(다비드 디그스)는 이제 자신이 그곳에서 친구 터너와 함께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세상에 알릴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영화는 엘우드의 기억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어린 시절 그가 보았던 흑인 인권운동 현장이 자주 오버랩된다.
할머니 해이티(오자뉴 엘리스-테일러)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어린 시절의 엘우드(이선 해리스)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을 닳도록 들으면서 라이프지에 실린 인권운동 시위대의 모습에 감격한다. 할머니가 일하는 호텔에도 흑인들이 당당하게 손님으로 들어오는 날을 꿈꾼다. 어리지만 총명한 엘우드는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믿으며 세상의 부조리에 맞설 용기를 키워간다.
서사의 전환은 불행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길을 가던 엘우드가 낯선 차에 오르고 곧바로 두 사람은 도난 차량 혐의자로 체포된다. 해이티의 눈물겨운 항의에도 불구하고 엘우드는 범죄 방조, 공모혐의로 니클 소년원으로 보내진다. 엘우드가 실제로 자동차 강탈의 공범이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경찰들에게는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만 필요할 뿐이다.
엘우드는 소년원에서 흑인들이 처참하게 차별 받는 광경을 목격한다. 백인들에 비해 낡은 옷을 입고, 형편없는 음식들을 받는다. 피부색에 따라 교도관들의 태도가 다르다. 엘우드는 소년원의 한없이 낮은 수준의 교육, 비위생적 환경에 대한 불만 따위를 말할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직감한다.
힘 있는 자들은 죄를 짓고도 빠져나간다. 그들의 약자들에 대한 학대는 처벌되지 않는다. 오히려 숨겨지고 가려진다. 가해자들은 일말의 죄책감조차 없다. 그들이 저지른 악행은 기억 속에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슬픔과 트라우마는 영원하다.
로스 감독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 그간의 영화들과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다. 잔혹함과 투쟁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인간미에 집중한다. 원작 소설의 자극적 폭력 장면들보다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들의 캐릭터 묘사에 중점을 둔다. 악행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악을 느끼게 하여 관객의 영혼을 건드린다. 드론 촬영으로 잡은 교도소 내 음산한 풍경, 보지 않고도 느껴지는 공포감이 압도적이다.
인종차별과 편견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흑인 아이들이 수영장에 발을 담그는 것을 막기 위해 수영장을 콘크리트로 메워 버린 볼티모어의 공공 수영장. 흑인들에게 음식을 팔지 않는 뉴올린즈의 식당은 전국에 수없이 많다. 인종차별은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다.
엘우드는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세상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여기서 좌절하고 주저앉는다.
과거는 어둠과 아픔으로 가득했고 현재도 여전히 암울해 보이지만 좌절하지 말고 용기와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마틴 루터 킹의 메시지가 어둠 속 빛이 되어 엘우드의 손을 잡아준다. 인내는 ‘궁극의 선’이라는 킹 목사의 가르침이 엘우드를 지탱해준다.
친구 터너는엘우드의 생각이 이상주의에 불과할 뿐이라고 거부하지만 두 친구의 형제애는 서로에게 끔찍한 상황을 견디어 내는 힘이 되어 준다.
엘우드의 할머니 해이티는 영화 속 최대 위안이다. 이 세상 모든 할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 내리사랑의 표본이다. 그녀는 감옥에 억울하게 갇혀있는 손자를 보러 가지만 면회를 거절당한다. 해이티는 대신 친구 터너를 보게 되고 엘우드에게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손자에 대한 애정과 보살핌이 느껴지는 눈물겨운 장면이다. 그녀의 연민은, 엘우드가 견디고 있는 소년원의 모든 비인간성을 상쇄한다. 짧은 시간 등장에도 많은 것을 얘기하는 엘리스-테일러의 절제된 연기가 감동적이다.
‘니클 보이즈’가 오스카 작품상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많은 비평가가 내어놓은 2024년 ‘베스트 10’ 리스트에 대부분 이름을 올렸다.
영화는 이 사회에 밝혀지지 않았던, 아니 우리가 외면해왔던 진실, 그리하여 은밀히 진행되어온 지상에서 가장 악랄한 폭력 인종차별에 대한 또 하나의 경종이다.
인간은 고뇌, 절망, 두려움, 악몽 뒤에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해 보이는 영화다.
김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