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로 불리는 'CES 2025' 개막이 십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간 협업 논의가 이뤄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6세대 HBM(고대역폭메모리)인 'HBM4'를 내년부터 본격 생산할 예정이라 젠슨 황을 향한 '영업'이 치열할 전망이다.
전 세계 AI(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는 차세대 GPU(그래픽저장장치)로 꼽히는 '루빈'을 오는 2026년부터 구글, MS(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에 본격적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HBM은 GPU 옆에 붙어 고속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황 CEO는 지난 6월 '루빈'을 최초로 공개하며 "루빈에는 HBM4가 채택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주력으로 쓰이는 HBM 층수는 8단, 12단이지만 HBM4는 20단 이상까지 올라간다. 업계에선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가 규정한 규격대로 D램을 쌓으려면 새로운 적층 방식이 필요하다며 HBM4부터는 '하이브리드 본딩' 방식이 적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 측은 지난달 초 'SK AI 서밋(Summit) 2024'에서 "HBM3E 16단도 MR-MUF(매스리플로우-몰디드언더필)를 사용할 것"이라면서 "하이브리드 본딩은 20단 이상을 위한 방식"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칩들의 전기적 연결을 위해 붙이는 전도성 돌기인 마이크로 범프(Bump)를 없애 칩 사이 간격을 더욱 좁힐 수 있는 기술을 뜻한다.
또 기존의 HBM 시장은 주문형 산업이었으나 HBM4부터는 맞춤형 산업으로 바뀌게 돼 파운드리(위탁생산)와의 시너지도 중요 경쟁력으로 꼽히고 있다. HBM을 쌓을 때는 패키지 내 최하단에 있는 베이스 다이(Base Die)가 필요한데 파운드리로 초미세 공정을 적용할 수 있는 로직(Logic) 다이를 활용하면 다양한 기능을 추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급한 기업은 삼성전자다. 지난 10월 31일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 실장(부사장)은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HBM3E와 관련해 "주요 고객사 퀄(제품 테스트) 과정상 중요단계를 완료하는 유의미한 진전을 확보했다"고 했는데 아직도 구체적인 공급 계약 소식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 선임연구위원은 "삼성전자의 HBM3E는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달리 기술 난도가 낮은 1a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엔비디아로부터 퀄 테스트를 통과한 것으로 보이지만 공급을 하고 있더라도 공급량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D램 제조사는 10나노(㎚·10억분의 1m)대 D램을 기술 개발에 따라 1세대(1x)에 이어 1y, 1z로 명명한 뒤 4세대(1a) D램부터 알파벳 순으로 세대를 높여왔다. 세대가 높을수록 D램 성능이 뛰어난 것인데 현재 엔비디아에 HBM 납품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경우 HBM3E에 5세대(1b) D램을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HBM4에도 5세대 D램을 사용할 것으로 보이는데 삼성전자는 6세대 D램을 사용해 '대역전극'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 위원은 "삼성전자는 이미 HBM3E 시장에서 주도권을 놓쳤기 때문에 오히려 엔비디아와 HBM4 공급 논의를 하고 있을 것"이라며 "삼성전자로선 HBM4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젠슨 황 CEO는 다음 달 7~10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CES 현장을 직접 찾아 개막 하루 전인 6일 오후 기조연설에 나설 예정이다. CES에 참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을 위한 전시관을 꾸려 황 CEO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