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특수군사작전'이란 이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9일(현지시간)로 1000일이 됐다. 당초 육·해·공군으로 우크라이나 국경 3면을 밀고 들어와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려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구상은 우크라이나의 항전과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물거품이 됐다. 이후 동부·남부 전선에서 '뺏고 빼앗기는' 소모전으로 치닫던 전황은, 최근 북한군 파병으로 대대적인 국면 전환을 맞았다. 최근 미국은 그간 '금기'로 여겨오던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 사용 제한 규정마저 풀었다.
하지만 끝모를 전쟁에 지금껏 우크라이나를 물심양면 지원하던 미국과 유럽 국가의 단일대오도 흔들리고 있다. 최대 지원국인 미국에선 '전쟁 종식'을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에 당선됐다. 유럽 내 최대 지원국인 독일도 내년도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지난 1000일의 전쟁 경과와 전망을 숫자로 살펴봤다.
러·우크라 사상자 100만 명
러시아의 전면 침공 1000일만에 우크라이나는 인적·물적 손실이 파괴적 수준으로 증가해 역사상 어느 때보다 취약한 국가가 됐다. 로이터통신은 "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갈등의 암울한 이정표"라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9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약 1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우크라이나의 유엔인권감시단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 민간인 사상자 3만6357명(사망자 1만1743명, 부상자 2만4614명)이 발생(8월31일 기준)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전쟁으로 사망한 어린이는 589명(11월14일 기준)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유엔과 우크라이나 관계자들은 실제 사상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현재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는 마리우폴 등 러시아의 포위 공격에 초토화된 지역 등의 피해 상황은 파악할 수 없어 합산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군인 피해가 컸다. 현대전이라고 하지만, 거의 매일 수천명이 무자비한 포격을 받으며 요새화된 전선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고 전차·장갑차·보병이 참호에서 공격을 주고받았다. 양측의 군사적 손실은 기밀 사안이지만, 지난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만1000명의 우크라이나 군인이 사망했다고 언급한 적 있다.
서방은 인해전술을 펼치는 러시아군의 사망자가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던 동안에는 하루 약 1000명의 러시아 군인이 사망했을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공식 집계된 사상자 수는 없지만, 러시아군 사상자는 70만명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의 출산율은 약 3분의 1로 폭락했다. 지난 18일 기준 전 세계를 떠도는 우크라이나 난민은 678만5900명이다. 유엔은 러시아 침공 이래 우크라아나 전체 인구의 4분의 1(1000만명)이 감소했다고 추정했다.
영토 5분의 1 뺏겨, 전쟁 피해액은 211조원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는 이들을 밀어내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하지만 병력 우세를 앞세운 러시아는 차근차근 점령지를 넓혀갔다. 현재 이들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거의 전부와 남쪽 아조우해 연안 전체를 점령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5분의 1을 점령·합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 영토와 비슷한 넓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8월 러시아 영토에 대한 첫번째 공격을 개시해,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있다. 이곳엔 최근 북한 파병군 1만여 명이 배치되는 등 러시아 병력 5만여 명이 우크라이나군을 밀어내기 위한 공세를 펴고 있다.
양국의 경제도 무너졌다. 우크라이나 경제 규모는 2022년 대비 3분의 1 규모가 됐다고 세계은행은 전했다. 세계은행과 유럽위원회, 유엔, 우크라이나 정부가 실시한 최근 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우크라이나의 전쟁 피해액은 1520억 달러(약 211조원)이다. 재건 및 복구 비용은 4860억 달러(약 675조 원)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명목 국내총생산(GDP)보다 2.8배 높은 액수다.
美 군사지원 85조원, 유럽 9개국보다 많아
현재 우크라이나는 국가 수입의 대부분을 국방비에 쏟아붓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의 재정 지원에 의존해 연금과 공공부문 임금, 기타 사회 지출을 감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의회 예산위원장인 록솔라나 피들라사는 "전투 비용이 매일 1억4000만 달러(약 1947억원)씩 들어간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내년에도 약 2조2000억 그리브니아(약 74조원)가 방위에 사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내년이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이 대폭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 최대 지원국인 미국은 내년 1월20일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부정적이며, 현재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국경으로 인정하는 방식의 종전안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2년 2월부터 올 8월까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군사 지원 총액은 611억 달러(약 85조 원)로, 유럽 9개국의 지원액을 모두 합한 것(505억 달러, 약 70조 원)보다 많다.
유럽 내 최대 지원국인 독일 정부는 이미 내년 예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현재 80억 유로(약 12조 원)에서 40억 유로(약 6조 원)로 삭감하는 안을 승인했다. 내년이면 전쟁이 끝날 것으로 전망한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 1월 트럼프의 취임과 함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협상이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란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 주요국 사이에, 평화협상의 가장 희망적인 시나리오로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내어주더라도 독립국가로 주권을 유지하고 러시아의 완전한 승리를 막는 것이라는 시각이 늘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모두 회복하고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계획은 현실성이 없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전쟁 피로도는 커지고 있다.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32%가 종전을 위해 일부 영토를 포기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는 1년 전 14%에서 두 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토 양보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