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주, 칼럼니스트

“우리는 보이지 않는 살인자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너무 흔해서 이로 인해 우리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는 것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다. 그 정체는 바로 소음이다.”
제임스 갤러허의 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소음은 대부분 기계음이거나 물리적인 소리이겠지만 인간의 내뱉는 듣기 싫은 말이나 소리도 소음처럼 부정적인 역할을 톡톡히 한다.
대선이 끝나고 나니 잔잔한 침묵이 흐를 것 같지만 그 뒷얘기도 만만찮다. 말없이는 못사는 게 인간이다. 의식주 다음으로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말이다. 또 인간이 가장 많이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려면 서로 간에 의사소통이 필요하고, 그 수단이 말하고 듣는 것이니 어쩌면 불가피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인간사 길흉화복이 말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을 조심하고 삼가야 한다는 경구도 덩달아 많아진다. 화(禍)는 입으로 드나든다는 구시화문(口是禍門)이나 말이 씨가 된다는 경구는 안중에 담고 살아도 좋을 듯하다.
이런 경구에도 개연찮고, 언행을 함부로 하다가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번 대선도 말의 성찬이었다. 그 말들은 시간이 흐르며 세간에 떠돌고 진위를 따지다 보면 언젠가는 거짓과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또 과거에 뱉어놓은 말 때문에 비판과 공격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렇다고 뱉어놓은 말을 다시 주워 담거나 지울 수가 없으니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게 고작이다. 자기가 뱉어놓은 말이 자신을 옥죄는 올무가 될 줄은 모르고, 한 말이겠지만 한번 잘못 뱉은 말은 평생의 허물로 남아 자신을 괴롭힌다는 걸 보여준 기회였다고나 할까. 무서운 말의 불변성이다. 수천년이 흘러도 말은 그대로 남아 후세에게 전해진다.
이런 말의 위력을 잘 아는 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혼낼 때도 말을 가려서 한다. 부모의 말이 자칫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못난 놈’이라고 꾸중만 듣고 자란 아이는 정말 못난 놈으로 자랄 개연성이 높다. ‘너는 커서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는 칭찬을 받고 자란 아이는 말이 씨가 돼 그렇게 성장할 가능성이 또한 크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쓸데없는 말들로 넘쳐난다. 방송마다 같은 뉴스가 반복되고, 스마트폰은 쉬지 않고 메시지를 읽어달라 보챈다. 그중에는 거짓과 과장도 많다. 그 때문일까. 언론 매체의 보도 내용은 물론, 개인끼리 주고받는 말마저도 곧이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불신사회다. 공허한 것과 진실한 것을 제대로 가리고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시끄러운 바깥으로 귀 기울이는 시간을 줄이고 내 안의 진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
삶의 지혜는 듣는 데서 비롯하고, 삶의 후회는 말하는 데서 비롯한다는 말처럼 내가 듣고 말하는 것들은 과연 진실한지 신중히 따져 듣고, 가려 말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란 옛 시구라도 가슴에 담고 사는 게 현명한 처세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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