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첫 7000억 달러의 이면…반도체 20% 뛸 때 배터리 12% 역성장

2025-12-12

심각해진 수출 양극화

올해 한국의 수출액이 사상 첫 연간 7000억 달러(약 1028조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산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올해 수출액이 7005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올해 1~11월 누적 수출액(6402억 달러)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증가하면서 2022년 같은 기간(6287억 달러) 이후 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언뜻 보면 낙관적인 소식이지만 이면의 그림자도 만만치 않다. 한국 수출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서다. 반도체 등 일부 품목의 호황이 낳은 ‘착시’ 때문에 나머지 대부분 품목이 우려스러운 불황에 처한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 1위 LG화학은 올해 8월부터 석유화학 부문 재직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데 이어 최근 첨단소재 부문에서도 희망퇴직 의사를 조사하고 있다. 사무직과 생산직 모두 1970년생(55세)까지 희망퇴직이 가능하며 위로금으로 최대 50개월분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LG화학은 본업인 석유화학 업황이 워낙 좋지 않고 전남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의 구조조정 과제도 안고 있어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LG화학의 석유화학 부문은 지난해 135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올해도 1~3분기 누적 117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 중이다.

전북 김제에 있는 자동차부품 제조사 알룩스는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올해 5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1차 협력사로 알루미늄 휠 등을 만드는 이 회사는 2001년 설립 이후 꾸준히 성장해 연 매출 600억원대까지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제조원가 급등으로 수익성이 급격히 나빠졌다. 자동차부품 업계에선 이 회사처럼 자금난과 미래 불확실성 확대로 휘청거리는 곳이 급증했다. 올해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 및 부품에 고율의 관세 부과를 적용하면서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8월 들어 미국에 자동차부품을 수출하는 기업 수는 전월보다 41곳 줄었다.

한국 수출이 연간 7000억 달러 돌파를 앞둔 호조세의 이면에 역성장의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석유화학과 자동차부품 업계의 근황은 빙산의 일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자금난 심화를 의미하는 지표인 전국 어음 부도율은 올해 5월 0.40%로 3개월 만에 10배(올해 2월 0.04%), 2015년 3월(0.41%)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올해 9월에도 0.25%였다. 어음 부도는 기업이 발행한 어음이 만기일에 지급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신용 위험이 커지면서 파산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 한은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글로벌 무역 갈등 지속과 환율 변동성 확대로 기업의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국의 15대 주력 수출 품목 중 올해 1~11월 기준 전년 동기보다 수출액이 증가한 품목은 5개뿐이다. 그나마도 의미 있는 성장률을 기록한 건 반도체(19.8%)와 선박(28.6%), 바이오헬스(7.0%) 등 3개다. 자동차(2.0%)와 컴퓨터(0.4%)는 성장률이 미미했다. 나머지 10개 품목의 수출 역성장은 심각한 수준이다. ▶일반기계(-8.9%) ▶석유제품(-11.1%) ▶석유화학(-11.7%) ▶철강(-8.8%) ▶자동차부품(-6.3%) ▶무선통신기기(-1.6%) ▶디스플레이(-10.3%) ▶섬유(-8.1%) ▶가전(-9.4%) ▶이차전지(-11.8%) 등으로 수출액이 1년 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석유화학 1위’ LG화학, 희망퇴직 신청받아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에 밀려 이미 수년간 수출 전선에서 고전했던 석유화학과 철강, 디스플레이 등은 ‘예견된 위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기업의 수출품 가격은 2023년 2분기부터 올해 9월까지 2년 넘게 하락하고 있다”며 “코로나19 팬데믹과 공급망 혼란으로 수출 가격이 급등했던 기저효과가 사라진 후에도 중국 기업이 저가 공세를 이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팬데믹 여파로 중국 내 제조업 과잉생산이 심화했던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기업이 수출 가격을 낮추고 수출 물량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에 지속적인 수출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작용 중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가격 경쟁력 약화를 기술 경쟁력에서 중국에 앞선 것으로 상쇄, 한국의 효자 수출 품목으로 자리 잡았던 이차전지 등 신산업 분야에서도 수출액이 마이너스 두 자릿수 역성장이라는 위기를 겪고 있는 점이다. 이차전지 수출은 2023년에 2015년 이후 8년 만의 첫 역성장을 기록했다. 이후 지난해 상반기엔 대구·경북 등 국내 이차전지 소재 생산 거점의 수출액이 전년 동기보다 60% 넘게 급감했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도 영향을 미쳤지만 근본적 원인은 기술 경쟁력에서도 중국에 밀린 데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은 안전성이 강점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신기술을 적용해 기존 약점이던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 삼원계(NCM) 배터리 위주로 수출시장을 공략하던 한국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이는 기술력 우위로 지금 잘 나가는 업종의 미래 또한 장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실제 산업연구원은 내년 한국 반도체 산업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제품 수출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기저효과와 수요 안정화로 전년 대비 수출 증가폭은 올해 1~11월(19.8%)보다 크게 줄어든 4.7%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 “산업 성장 위한 분위기 조성 절실”

친환경·방산 수요 급증으로 올해 1~11월 수출액이 28.6% 증가했던 선박도 내년엔 -4.0%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차전지는 내년 -12.0%로 전망이 한층 좋지 않다. 지난달 한국경제인협회는 대기업 200곳이 응답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이 반도체 등의 10대 주력 수출 업종에서 5년 뒤 중국에 모두 추월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은 설비와 공정, 인재 모두 수요 대비 태부족한 상황”이라며 “질적 성장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대외 리스크 최소화를 위한 외교 강화, 신산업의 핵심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시스템 구축, 기업의 투자를 저해하는 세제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지만수 연구위원은 “소비재에선 품질과 브랜드 가치 제고로 중국산과 차별화해야 하고, 자본재·중간재에선 글로벌 공급망의 상호의존성(분업과 특화 등으로 각국이 서로 의존하는 성질)을 활용해 고객사와 안정적 거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절실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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