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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 세계 인구는 약 80억 명에 이른다. 그중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산해 25억 명, 이슬람교 20억 명, 유대교는 1,500만 명이다. 이들의 합 45억 명은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세 종교의 공통점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아브라함이다. 유대교에서는 언약의 조상이고, 기독교에서는 믿음의 조상이며, 이슬람에서는 예언자의 계보를 잇는 핵심 인물이다. 기독교 경전인 '성경', 유대인 율법서 '토라(모세 5경)' 모두 야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장면을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네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하리니.”
-창세기 22:17
이슬람 경전 코란에는 아브라함에 대해 성서와 같은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아브라함 자손들에 관한 이야기와 이들을 땅 위에 퍼뜨렸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될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 만약 이러한 기록들이 단지 혈통이 아니라 믿음의 계보를 의미한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셈이다. 아브라함이 자신이 섬기는 신,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은 단순한 자손의 번성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믿음의 세계관, 하나의 영적 유산이 인류 문명의 축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예고였다. 어쩌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예언의 내용적인 측면만 고려하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신의 언약은 이미 성취된 사건일 수도 있다.
주목할 만한 건, 한 인물에서 시작된 이야기치고는 너무나 거대한 규모라는 점이다. 더욱이 이 세 종교는 단순히 신앙 체계에 그치지 않고 정치, 문화,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문명 체계를 바꾸어 놓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토록 거대한 신앙의 체계는 믿음의 대상은 같지만, 서로 다른 계시, 다른 해석, 다른 길로 나뉘었다. 유대교는 모세를, 기독교는 예수를, 그리고 이슬람은 무함마드를 따른다. 그리고 이 셋은 모두 가나안과 예루살렘이 약속의 땅이라 주장한다. 물론 기독교의 세계관은 특정한 지역에 대한 지정학적 의미 부여에서 자유롭다.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헬라인이나 이방인에게까지 모두에게 열려있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믿음의 체계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유대교와 이슬람은 아직도 이 세계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도 세상을 심판하고 구원하여 새롭게 재편할 메시아를 기다린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지역을 두고 서로 싸운다. 십자군 전쟁이 그랬고, 레콩키스타, 오스만 제국과 유럽의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까지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메카에서 시작된 계시
지금까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지명에 대해 알아봤다. 이제 이 지역에 대한 야욕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세계관에 대해 알아볼 차례다.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시작된 또 하나의 예언, 이슬람이다. 이슬람을 가장 마지막에 소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슬람은 기원후 7세기경에 시작되었다. 유대교는 이집트 문명과 시기를 같이하고 기독교의 시대적 배경은 로마다. 하지만 이슬람은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에 시작된 신흥(?) 종교로, 시간순으로 마지막 서열이다.
이슬람은 왜 지금까지도 갈등과 분쟁 속에서 살 수밖에 없을까? 이슬람을 이해해야 비로소, 이란까지 합세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근본 원인을 알 수 있다.

영적 존재로부터 계시 받는 무함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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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는 창시자 무하마드(흔히 마호메트라고 칭했던 인물)에서 시작한다. 570년, 아라비아 반도의 중심부 메카라는 도시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무함마드(Muḥammad)의 실제 이름은, Muḥammad ibn ʿAbdallāh ibn ʿAbd al-Muṭṭalib al-Hāshimī al-Qurashī’, 우리말로는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 이븐 압둘무탈립 알하셰미 알꾸라이쉬’다. 서양인에게 이름을 물으면, 데이비드나 마이클 등 짧게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출생 기록에 적힌 공식적인 이름은 길고 복잡한 경우가 많다. 가령 영국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의 풀 네임은 ‘David Robert Joseph Beckham’, 데이비드 로버트 조셉 베컴이다. 가문 명, 세례명, 혹은 아버지, 할아버지 이름을 중간에 삽입해 전체 이름을 구성한다. 무함마드도 마찬가지다.
“칭송받은 자(Praised One)”라는 뜻의 Muḥammad (محمد)가 실제 불리는 이름이다. 그 뒤에 붙여진 이름들은 가문이나 부족을 뜻한다. ibn ʿAbdallāh (이븐 압둘라)에서 ‘ibn’은 ‘~의 아들’이라는 아랍어 표현이니 압둘라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뒤이어 등장하는 ibn ʿAbd al-Muṭṭalib (이븐 압둘무탈립)는 압둘무탈립의 손자, .al-Hāshimī (알하셰미)는 하셈(Hāshim) 가문 출신을 의미한다. 참고로 하셈은 아브라함의 첫째 아들인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여겨지는 명문 가문이다. 마지막으로 al-Qurashī (알꾸라이쉬)는 무함마드가 꾸라이쉬(Quraysh) 부족 출신임을 나타낸다. 꾸라이쉬는 메카의 유력한 부족 중 하나다.
무함마드의 전체 이름을 종합해 보면 이렇다.
꾸라이쉬 부족의 하셈 가문에서 태어난 압둘무탈립의 손자이자 압둘라의 아들인 무함마드
평생 본인 이름을 다 외우고 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길고 복잡하다. 하지만, 별다른 부가 설명 없이 출신과 배경을 알 수 있으니 장단점이 있다. 이슬람의 시작을 알린 그였으니 이름만큼이나 대단한 집안 출신으로 예상되지만 정반대였다. 무함마드의 유년기는 축복보다는 결핍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무함마드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 압둘라가 세상을 떠났다(부계 사회에서 유복자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불행의 시작이었다). 여섯 살 때는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오갈 곳 없는 무함마드는 할아버지와 일가친척들 집을 떠돌며 자란다. 가난하고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낸 무함마드가 겪은 상실감은 그가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는 밑바탕이 되었다.
메시아가 아닌 예언자, 무함마드

무함마드가 첫 계시를 받았던 자발 알누르 산의 히라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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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이 이슬람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무함마드에 대한 인식이다. 흔히 마호메트(Mahomet, 무함마드의 영어식 표기)라고 알려진 무함마드는 ‘알라’라 명명된 신의 마지막 예언자다.
참고로, 무함마드라는 이름은 아랍어 원음을 서양식 언어로 음역하는 과정에서 왜곡되어 라틴어에서는 마호메투스(Mahometus), 프랑스어와 영어에서는 마호메트(Mahomet)로 전해졌다. 이후, 본래의 무함마드보다 마호메트로 더 알려졌는데, 이는 중세 유럽의 이슬람에 대한 무지와 적대적 정서 속에서 굳어졌다. 특히 십자군 전쟁과 오스만 제국의 위협으로 유럽이 이슬람을 이교로 간주했고 마호메트는 거짓된 예언자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18세기 계몽주의와 19세기 아시아 지역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서구 학계는 이슬람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학문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이후, ‘마호메트’라는 칭호가 시대착오적 편견으로 간주되었다. 지금은 무함마드 (Muhammad)라는 아랍어 원음 표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무함마드는 기독교의 예수와 같은 신적 존재가 아니다. 이슬람의 신도들이 무함마드를 신처럼 떠받든다고 보이는 사례들이 있어 그렇게 보일 순 있으나 실제론 그렇지 않다. 시초다 보니 신격화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도 교리적으로도 무함마드는 신의 계시를 전달하는 예언자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달리 무함마드의 일대기는 기록이 남아있다.
성경은 예수의 유년 시절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어린 시절 성전에 올라가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벌이는 장면 등이 전부다. 대부분의 지면은 공생애, 즉 성인이 된 이후에 어떤 일을 했는지에 집중한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었다는 성육신의 신비, 십자가 고난 이후의 부활과 같은 신적 의미를 부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무함마드는 예수와는 달리,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남아 있다. 물론, 전승과 후대에 남겨진 기록,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석에 의존하고 있어 제한적이긴 하나 무함마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구성이 가능할 만큼의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한 이슬람 학자들은 무함마드의 예언자적 자질이 초자연적 표징이 아닌 윤리적 인격과 공동체의 신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함마드의 유년기는 이슬람 경전이라 일컫는 꾸란(Qur’ān)보다 후대에 기록된 하디스(Hadīth)와 시라(Sīrah)에 남아있다. 꾸란에는 위대한 성품의 소유자 정도로만 언급된다. 하디스에는 무함마드가 했던 언행이, 시라에는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어려서부터 상업에 재능이 있었고, 정직하고 성실하며 타인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만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알 아민’(Al-Amīn, الأمين),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별칭을 갖고 있었는데, 상업에 종사하면서 무함마드와 같이 거짓말이나 속임수 없이 정직하게 일하던 인물은 없었다고 전해질 만큼 윤리적으로 매우 뛰어난 성품의 소유자라고 전해진다. 이러한 그의 일생은 훗날,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전하게 되었을 때 신뢰를 얻는 기반이 된다. 그렇게 정직했던 사람이 거짓말할 리 없다는 일종의 신념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계속>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 꾸물
기사 : BRY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