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서울 양천구의 한 84㎡형 아파트의 임대차 갱신 계약은 기존 전세 보증금 9억원을 6억5000만원으로 낮추고 월 100만원씩 납부하는 조건으로 바뀌었다. 줄어든 보증금에 대한 월세는 금리로 환산하면 연 4.8% 수준으로, 최근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금리(3.5~4%)보다 높다. 양천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6ㆍ27 대출 규제 이후, 원하는 금액만큼 전세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세입자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보증부 월세(반전세)로 돌리게 되는데, 목동 주변을 떠날 수 없으니 월세 부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최근엔 이런 세입자가 많아지다 보니 집주인이 먼저 월세로 돌리자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의 월세화 흐름이 빨라지는 조짐이다. 지난 2021년 빌라 전세사기의 후폭풍으로 연립ㆍ다세대ㆍ오피스텔 중심으로 이뤄지던 월세화 현상은, 최근 정부의 6ㆍ27 전세대출 제한 조치 이후 아파트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전세→월세’ 갱신 거래 비중 상승세
24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7월(23일 기준) 서울 아파트 임대차 갱신 계약 중 전세가 반전세(또는 월세)로 바뀐 건수는 220건으로 전체 갱신 계약의 5%에 해당했다. 1년 전 같은 기간엔 159건(3.6%)이었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23일 현재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4343건으로 대출규제 발표날인 지난달 27일보다 2.1%(512건) 줄었다. 월세 매물은 3.4%(653건) 증가한 1만9449건이었다.

우선 수도권 주택에 대한 전세대출 보증비율이 축소된 여파로 풀이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 6월 수도권과 규제 지역에서 전세 대출 보증 비율을 100%에서 90%로 낮춘 데 이어, 이달 21일에는 80%로 또 낮췄다.
전세대출 보증은 세입자가 은행 등 금융회사로부터 전세대출을 받을 때 보증기관이 해당 대출 상환을 보증하는 것이다. 세입자가 1억원을 대출받았다면 기존에는 보증기관이 세입자가 대출금을 갚지 못할 때 1억원을 대신 갚아줬지만, 앞으로는 8000만원까지만 갚아준다는 의미다. 결국 금융사의 위험 부담이 커지다 보니 대출 한도가 주는 수순으로 이어지고 있다.
갭투자 대출 막자 신축 아파트 월세 비중 45%까지
갭투자에 활용되던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금지된 영향도 있다.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고 소유권을 얻는 조건으로 나오는 대출이다. 통상 신축 아파트에선 분양권자가 이 제도를 활용해 전세 매물을 많이 내놓는다.
현재 입주를 앞둔 아파트 단지들의 매물을 보면 월세가 전ㆍ월세 매물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아실에 올라온 성동구 라체르보푸르지오써밋의 전ㆍ월세 물건 472건 중 월세(176건) 비중은 37.2%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서초구 메이플자이는 월세(1067건) 비중이 전ㆍ월세 물건(2349건)의 45%에 달한다.

전·월세 상승 vs. 안정화…엇갈리는 전망
전문가들은 주택의 월세화가 진행되면서 월세액도 상승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 월간 주택가격 통계를 보면 지난달 서울의 주택 월세 지수는 100.5로 2015년 통계 공개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023년 8월 97.0을 기록한 이후 1년 10개월째 상승세다. 윤지해 부동산 R114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부동산 대책으로 매수 심리가 꺾이면서 일부는 임대차로 수요가 넘어갔다”며 “전세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니, 월세로 몰리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전ㆍ월세가 안정될 거란 시각도 있다.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금리가 낮은 전세 대출이 과도하게 풀리며 전셋값 초과 상승을 이끌었다”며 “대출 한도를 줄이면 전셋값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진 집주인이 전셋값을 내리고, 일부 지역에선 급매물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세도 6ㆍ27 부동산 대책 영향으로 4주째 둔화 흐름을 보였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7월 셋째 주(7월 21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16% 올라 전주(0.19%) 대비 상승폭이 0.03%포인트 축소됐다. 일부 재건축 추진 단지와 대단지 등 선호단지 중심으로 가격이 오르기도 했으나, 매수 관망세가 지속하고 거래량이 줄어들면서 전체 상승폭은 축소됐다고 부동산원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