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 세계 각국은 AI 기업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AI 연구 인프라 구축을 정부가 지원하기도 하고, 연구자금과 보조금, 세제혜택 등을 제공하면서 AI 기업 성장을 위해 국가 차원의 노력을 펼친다. AI가 곧 국가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띄는 AI 기업을 보유한 나라는 많지 않다. 오픈AI, 구글, 앤트로픽, 메타 등을 보유한 미국과 딥시크, 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두각을 나타내는 중국만이 선도적 AI 기업을 보유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미스트랄AI가 있는 프랑스 등도 명함을 좀 내밀 수준이 됐고, 한국의 경우 LG나 네이버 등이 AI 시장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글로벌 수준과 비교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
일본은 어떨까? IT 산업에서는 다소 뒤쳐진 일본은 AI 국가 경쟁을 위한 기업을 보유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을 줄 수 있는 기업이 최근 일본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바로 사카나AI다.
2023년 도쿄에 본사를 둔 일본 이 AI 스타트업은, 창업 1년 만에 유니콘 기업이 됐다. 지난해 9월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벤처 캐피탈이 1억달러 이상 자금을 투자하면서, 사카나AI는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이 됐다.
사카나AI는 누가 설립하고, 어떻게 성장했을까?

회사명 사카나는 ‘물고기’를 뜻하는 일본어 ‘さかな(사카나)’에서 유래했다. 단순한 규칙으로 하나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물고기 떼처럼, 자연의 집단 지성에서 영감을 얻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글 브레인 일본 연구소 출신의 일리언 존스(Llion Jones)와 데이비드 하(David Ha)가 공동 창립했다.
일리언 존스는 생성형 AI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어텐션 이즈 올 유 니드(Attention is all you need)’ 논문을 쓴 공동 저자 8명 중 한 명이다. 2017년 발표된 이 논문은 ‘트랜스포머’라는 AI 알고리즘을 제시했고, 생성형 AI 열풍을 일으킨 본원지다.
또 다른 공동 창립자인 데이비드 하는 구글 브레인 일본팀에서 근무하다가, 스태빌리티AI의 연구 책임자로 근무했었다. 구글 일본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 가까운 사이였던 둘은 2023년 도쿄에 사무실을 차리게 됐다.
재밌는 사실은 일리언 존스와 데이비드 하는 모두 일본 국적이 아닌,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AI 경쟁이 치열한 북미 시장에서 벗어나 비(非)서구권에서 AI 모델을 개발하고 싶었던 이들은, 마침 자국 AI 기업을 키우고 싶었던 일본 정부와 뜻이 맞았다.
아직 카드보다 현금을 선호하는 보수적인 일본 문화 탓에, AI 전환이 늦어지고 투자 역시 소극적이었던 일본 정부는 뒤늦게 AI 지원과 규제 완화에 나섰다. 그리고 사카나AI는 초기 구축에 수백억원 자금이 드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일본 정부에 무상으로 지원받아 성장할 수 있었다.
1억달러 투자 유치, 유니콘 기업의 성과는?
지난해 9월 사카나AI는 시리즈 A 펀딩 라운드를 1억달러(약 1393억원) 이상 조달하며 마무리했다. 현지 언론은 엔비디아가 수백억원 이상을 사카나AI에 투자했다고 전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사카나AI에 투자한 이유로 “사카나AI가 일본에서 AI 대중화를 위해 기울이는 노력에 매료되었다”라고 밝혔다. 젠슨 황 CEO는 성명에서 “각국은 자체적인 대규모 언어 모델을 통해 데이터, 문화, 언어를 수집하고 체계화하기 위해 주권적 AI를 도입하고 있다”며, “사카나AI는 일본에서 AI 민주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카나AI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사카나AI는 오픈AI같이 방대한 데이터셋을 기반으로 AI를 훈련하는 기업들과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카나AI는 집단 지성을 모방해, 여러 소규모 AI 모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집중했다. 따라서 적은 자원으로도 기존 LLM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성능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기대에 부응하듯 사카나AI는 최근 새로운 AI 아키텍처를 공개했다.

지난 12일 사카나AI는 ‘연속 사고 머신(CTM, Continuous Thought Machines)’를 발표했다. 사카나AI는 CMT이 사람 뇌가 사고할 때 뉴런이 활동하는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기존 인공 신경망과 다르게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기존 인공 뉴런이 현재 입력에만 반응한다면, CTM은 각 뉴런이 자체적인 시간 축을 가지고 정보를 해석하고 반응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즉, 뉴런별로 과거 기억을 유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출력을 결정한다.
사카나AI는 CTM의 주요 장점으로 시간 경과에 따라 문제 해결 방식을 관찰하고 이를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기존 AI 시스템이 신경망을 한 번 통과해 이미지를 분류한다면, CTM은 여러 내부 단계를 거쳐 과제 해결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카나AI는 2012년 ‘딥 러닝 혁명’은 뇌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현대 AI 발전을 위해서는 뇌의 작동 방식과 더욱 가까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점에서 CTM은 뇌와 유사하게 작동하는 방식을 구현한 사카나AI의 첫 번째 시도라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가 기대하는 AI 기업, 사카나AI는 앞으로
AI 분야가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흘러가는 와중에, 일본은 최근 AI 업계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시장이다. 일리언 존스와 데이비드 하가 일본을 선택한 이유에는 일본의 기술력과 인력 수준이 높다는 점도 주효했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일본 내 AI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2년간 29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오픈AI는 도쿄에 사무소를 열기도 했다.
일본 정부 역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AI 전담 주무 부처를 출범하고 AI 예산을 증액하는 등 AI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올해는 AI 분야 직접 지원 예산을 1969억엔(약 2조원)으로 전년 대비 67.4% 증액하기도 했다.

지난 13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데이비드 하는 일본에 국방을 목적으로 하는 자체 AI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우선’의 정책 기조로, 최첨단 AI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데이비드 하는 “사카나AI가 공공 부문에 큰 야망을 갖고 있으며, 방위 관련 프로젝트에서 정부와 협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인간 행동에 대한 AI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염병 발생을 예측하고 전쟁, 자연재해 등을 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가 어떻게 확산될지 정확하게 예측하고 가능한 대응책을 사카나AI가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히로키 타니구치 사카나AI 사업 개발 매니저는 닛케이 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에는 수많은 AI 기업이 있지만, 일본 기업들은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며, “특히 정부 기관을 중심으로 일본산 AI 설루션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데이비드 하는 일본 방위 산업을 비롯해 일본 AI 산업과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AI만으로는 일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지만, AI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사카나AI는 창립 1년 만에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투자를 받아 유니콘 기업이 됐다. 일본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인 AI 스타트업이다. 사카나AI는 일본 AI를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최가람 기자> ggchoi@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