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양학섭 편집국장) 정부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다시 규제의 고삐를 죄었다.
서울 전역과 수도권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고, 대출 한도를 대폭 줄였으며, 세제와 단속까지 총동원한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명분은 주거 안정이다. 하지만 방향은 또다시 ‘규제 일변도’다.
추경호 부총리는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고 대출과 세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갭투자를 차단하겠다”며 실거주 의무를 추가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고가주택 대출 한도를 최대 2억 원까지 낮추고, 전세대출에도 DSR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이쯤 되면 규제가 아닌 ‘전면 봉쇄’에 가깝다. 서울의 집 한 채를 사거나 전세를 얻는 일 자체가 허가와 심사, 규제의 덫에 걸리게 됐다. 정부는 “시장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국민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집 한 채 마련하려던 서민들에게 이번 조치는 청천병력 같은 통보나 다름없다.
부동산 시장은 단순한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거래가 막히면 세금이 줄고, 건설·금융·소비 전반이 얼어붙는다. 이는 곧 경제 침체의 그림자로 이어진다.
정부는 수요 억제에만 집착한다. 하지만 수요 억제가 실수요까지 옥죄면 시장은 왜곡되고, 결국 거래 절벽으로 돌아온다. 2020년대 초반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강력한 규제로 거래가 끊기고, 몇 년 뒤에는 ‘시장 침체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규제를 풀었다.
이제 또다시 같은 사이클이 시작된 셈이다. 정책의 일관성 부재는 시장 불안의 근원이다.
오늘은 규제, 내일은 완화. 이런 정책은 투기꾼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국무조정실은 ‘부동산 불법행위 감독기구’를 신설해 전세사기·가격 띄우기 등 불법 거래를 직접 조사하겠다고 했다. 국세청도 자금출처 전수조사와 고가 증여 단속을 예고했다.
물론 부동산 시장의 투기적 행태는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나 정책의 칼끝이 서민을 향해선 안 된다. 투기꾼을 잡겠다고 실수요자까지 옥죄는 건 정의가 아니다.
대출을 틀어막아 얻는 안정은 ‘거래 없는 안정’, 즉 ‘침묵의 시장’일 뿐이다. 정책은 시장을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도구여야 한다.
정부는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냉소적이다. 공급은 여전히 ‘계획’일 뿐, 실제로 착공되거나 분양되는 물량은 보이지 않는다.
공급이 눈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수요 규제는 시장 공포만 키운다. 주택 공급은 시간과 절차가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속도전’이 아니라 ‘실행의 투명성’이다. 언제, 어디에, 얼마만큼의 주택이 공급되는지를 국민이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신뢰가 생긴다.
정부가 진정으로 시장 안정을 원한다면 필요한 것은 새로운 규제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정책 방향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정부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를 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장은 스스로 안정된다.
지금의 대책은 충분히 강력하다. 그러나 방향이 불분명하다. ‘불법행위 근절’과 ‘시장 안정’이라는 두 목표가 같은 칼날에 얹혀 있다. 칼이 예리할수록 그 끝은 더 조심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의 불안은 정부의 통제로 해결되지 않는다. 시장은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로 움직인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규제의 강도가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정부가 다시 규제의 시대를 열었다면, 그 칼날은 투기꾼을 향해야지 서민과 중산층을 겨눠서는 안 된다. 집은 투기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다.
정책의 목적이 가격 억제가 아니라 국민의 안정이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규제가 아니라 더 똑똑한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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