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길원 大記者

최혜옥 시인
충남 보령 출신으로 2018년 '애지' (봄호)를 통해 등단.
<함께 나누기> '가을 한 권'이란 제목부터 읽는 이를 끌어당긴다. “저문다는 것은 가벼워지는 것 / 잎잎이 새겨진 최후의 열정은 붉은빛이다” 잎이 떨어지는 늦가을은 일 년 중 저무는 계절이다. 저문다는 걸 가벼워짐에 비유했다. 언뜻 생각하면 잎을 떨어뜨렸으니까 나무로선 다이어트 한 셈이니 그렇게 표현했다고 보면 쉬운데, 몸 뿐 아니라 마음까지 비우는 계절로 봐야겠다.
“물기 한 점 없는 / 노을을 표절한 문장이 이토록 뜨거운가” 노을빛은 다양하다. 같은 시간대라도 바닷가에서 보는 노을, 산 위에서 보는 노을 그 가운데 날 맑은 날 형성된 노을은 단풍잎처럼 벌겋다. 물기 있다면 진짜 노을이지만 물기 없으니 단풍을 비유함이라 생각 든다. “사족을 지우는 나무들 / 같은 무늬로 집단 투신하는 / 저 몸짓은 사선 또는 곡선이다” 시인이 이 시행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을까. 가을에 관한 수많은 시에서 뿜어 나온 비슷 비슷한 표현이 아닌 자기만의 독창적인 표현을 만들려면. 나뭇잎이 떨어져 나감을 나무의 사족(四足)을 지운다고 한 표현, 집단 투신한다는 표현. 그리고 나뭇잎이 떨어지면서 만드는 사선과 곡선 “몸으로 쓰는 곡진한 사연 / 읽기도 전에 받침이 빠지고 탈자가 늘어난다”
나뭇잎이 떨어져 나감을 이번엔 글에 비유했다. 글 써 내려가는데 완성도 되기 전에 받침 빠지고 오 탈자가 늘어나는 것처럼. 이 시는 가을에 대한 특별한 의미 부여보다는 이런 표현의 맛을 느끼면 될 듯하다.
“퇴고 중인 가을 한 권 / 붉은 유서가 기록되는 허공이 어지럽다” 글의 완성은 퇴고이다. 뺄 부분은 빼고, 넣을 부분은 넣는. 가을은 일 년을 완성하는 계절이다. 완성된 계절이 남기는 선물이 ‘붉은 유서’다. 마지막 시행에 이르러서도 시인은 독창적이고 맛깔스러운 표현을 잊지 않았다.
평생 울음소리 내지 않다가 가시에 찔려 죽어가면서 마지막 아름다운 목청으로 울다 가는 가시나무새처럼, 가을을 아름답게 꾸미고 사라지는 단풍잎에 ‘붉은 유서’란 표현이 참 어울린다. 이런 표현 하나 건져도 올 가을 풍족할 게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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