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 기자 hjh1212@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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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1명당 3천942명 검진 ‘무한 대기’...“시간·비용 낭비, 제도 개선 필요" 관련 협회 “충분한 사전 검토·협의 필요해”

제철소, 조선소 등 유해 요소가 많은 작업장 내 근로자가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특수건강검진’(이하 특수검진) 장벽이 지나치게 높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행법은 별도의 자격을 갖춘 의료시설, 의료인만 특수검진을 하도록 규정 중인데 그 수가 근로자 대비 터무니없이 적고 이상 소견 시 내과 등에 문진을 받아야 해 시간, 비용 낭비가 크다는 것이다.
13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특수검진은 분진, 소음, 유기화합물 등 유해 인자에 노출되는 업종 근로자가 입사 시 받아야 하는 검진이다. 현재 전국 263개 지정 기관과 677명의 특수검진의사가 시행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전국 특수검진 대상 근로자 수는 266만8천878명으로 집계됐다. 단순 계산 시 특수검진 의료진 한 명당 3천942명을 검진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작업장 신규 유입자는 물론, 이직하는 근로자에 대한 특수검진 의무도 부여하고 있다.
제철소, 조선소 등은 신규 유입이나 이직 등이 매우 잦은데 동시다발적 검진 수요를 의료기관과 의료진이 소화할 수 없을 뿐더러 수요자 역시 ‘무한 대기’에 빠지기 일쑤인 것이다.
더욱이 특수검진 항목 대다수는 폐기능, 소변, 청력 등 일반 검진 항목과 유사하며 이상 소견 발생 시 문진과 처방은 내과 등이 맡아야 하는 점도 비효율 문제로 거론, 규제 완화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한 근로자 A씨는 “검진 가능한 병원을 찾고 순번을 기다리는 데에만 장시간이 걸리는 데다, 경우에 따라 특수검진 병원, 일반 병원 등을 오가야 해 시간, 비용 부담이 크고 생계에도 지장이 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특수검진 제도를 일부 완화, 의료시설과 근로자 모두의 편의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특검 기관 관계자는 “현행법대로면 특검 의사를 대폭 확충해야 하는데, 특검 의사는 일반 의사 대비 인건비가 높은 데다, 이상소견이 발견되면 일반 병원으로 옮겨져야 한다”며 “의료기관과 근로자 모두 비용과 효율성 문제를 공유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다만, 규제 완화가 직역간 이해 충돌로 이어져 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도내 한 내과의사 B씨는 특수검진 규제 완화에 대해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특수검진 의사와 내과 등 일반 직역 간 이른바 ‘밥그릇 싸움’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어 논의가 원활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특수건강진단협회 관계자는 “단순 채용 전 건강검진과 달리 특수검진은 특수 현장 근로자의 유해 환경 노출 여부를 종합 판단, 관리하는 과정”이라며 “자격 확대, 규제 완화 논의에 충분한 사전 검토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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