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원래는 병원으로 돈벌이하는 게 아니었다고?

2025-03-27

[문정주의 의료와 사회-10]

광장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해 본 적이 있니? 오, 많이들 해보았네. 특별한 경험이었겠구나.

내가 처음 촛불 광장에 나갔던 때는 2008년 5월이었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첫해인데,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아무 제한 없이 수입하겠다고 발표한 거야. 뇌세포를 파괴하는 질병인 광우병은 감염된 동물의 고기를 먹기만 해도 걸릴 수 있는 특이한 병이야. 1980년대 영국의 축산농가에서 크게 유행한 뒤 여러 나라로 번져나가 세계적인 공포의 대상이 되었어. 미국에도 2003년부터 유행이 시작돼, 그러니까 그 나라의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어. 그런데도 정부가 고기를 팔고 싶어 하는 미국의 요구를 덥석 들어준 거야. 사람들은 분노했어. 서울 광화문광장의 집회에는 엄청난 사람이 모였고 특히 청년, 중고생, 어린아이와 함께 온 젊은 부모가 많았어. 촛불의 열기는 아주 뜨거워서 결국 한 달 만에 정부가 미국과 다시 협상해야 했어. 그 결과 수입은 하되 태어난 지 30개월이 안 되는 소에서 나온 쇠고기로 제한하고 광우병의 위험이 큰 뇌와 뼈는 수입하지 않게 되었어. 여린 촛불이 한데 모여 우리 모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안전판을 만들어낸 거야.

그런데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입하려 한 것은 쇠고기만이 아니었어. 미국식 의료제도도 들여오려 했어.

미국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국민건강보험이 없어. 국가가 책임지는 의료보장이 군인, 노인, 빈곤층에게만 적용돼서 대다수 국민은 사립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해. 사립 보험의 가족당 보험료는 우리 돈으로 계산할 때 매월 100만 원이 넘는 액수라, 빠듯하게 살아가는 계층은 그 돈을 낼 수 없어 아예 의료보험 가입을 포기해. 2007년 통계로 미국 국민 중 거의 5천만 명은 의료보험이 전혀 없어서 아프거나 다쳤을 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었어. 게다가 병원 중에 15%가 영리병원(병원으로 돈을 벌어 투자자끼리 나눠 갖는 병원)으로, 돈벌이에 좋은 심장수술·관절수술 같은 것만 주로 하고 매우 비싸게 받아. 이웃인 캐나다,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 의료를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국가가 보장하고 병원 중에 절대다수가 공공 또는 비영리인 것과 아주 달라.

‘뼛속까지 친미·친일’(경향신문 2011년 9월 7일)이어서였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 미국을 따라가려고 우리나라에 사립 보험의 의료보험 기능을 확대하고 영리병원을 세우는, 이른바 의료 민영화를 추진했어. 우리나라 의료법에 병원이 ‘비(非)영리’라고 분명하게 적혀 있는데 그걸 고쳐 영리병원을 만들 수 있게 한다고 했어. 민영화가 선진화라면서 국민을 그야말로 계몽하러 들었어.

이미 다 영리병원인 줄 알았다니

십수 년 전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건, 그 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들려주고 싶어서야.

“지금 우리나라의 병원들이 비영리라고? 돈벌이하는 영리병원 아니었어?”

“이미 다 영리병원인 줄 알았는데 이제야 만들게 한다니, 대체 뭔 말이야?”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런 말을 주고받는 거야. 어떻게 생각되니? 어, 말하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

내게는 뜻밖이었어. 영리병원이란 주식 투자를 하듯, 돈을 불려 이익을 나눠 가질 목적으로 장사하는 병원이야. 그와 같은 병원을 우리나라는 법으로 금지해서 영리병원이 없어. 혹시 이익이 나도 그 돈을 모두 인건비, 시설 투자비 등으로 병원을 위해서 써야 하고 밖으로 가져갈 수는 없는 비영리 기관인 거야. 그런데도 ‘다 영리병원 아니냐’라는 말을 듣는 건 병원에게 억울하고 섭섭할 일이었어.

물론 의료비가 사람들에게 상당한 부담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 2008년인 그때는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건강보험이 출발한 지 8년째였는데, 진료받는 환자가 내야 하는 본인부담금이 적지 않아 병원은 여전히 서민에게 ‘돈 때문에 두려운’ 곳이었어. 하지만 그건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제도적인 불완전성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병원이 돈벌이를 위해 진료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었어.

그러나 그 말들을 곱씹어보며 깨달았어. 영리, 돈벌이라는 사람들의 표현이 꼭 병원에 내야 했던 돈 액수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야. 대신에 거기에는 우리나라 의료에 대한 강한 비판이 담겨 있었어. 환자로서 진료받은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의사인 나보다 더 적나라하게, 현실을 보았던 거야.

돈에 관한 판단이 앞선다면

사람들의 경험은 대개 비슷했어.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한참 기다린 끝에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의사가 환자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자기 말만 빠르게 해버렸다든가, 궁금한 걸 물어보려 해도 말을 잘라 버려 제대로 묻지도 못했다든가, 자세한 얘기를 하기도 전에 의사가 검사부터 하라고 시켰다든가, 비싼 검사를 큰돈 내서 했지만 정작 결과를 알려줄 때는 ‘이상 없다’ ‘특별한 거 없다’라는 한두 마디 말이 전부였다든가 하는 거야. 다시 말해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진료를 받았어도 환자에게 돌아온 건 푸대접이었어. 이에 대해 사람들은 병원이 ‘돈이나 벌려’ 한다고 비판한 거야.

입원진료에서도 그래. 외래진료(바로가기1)를 받고서 의사의 지시에 따라 입원했거나, 갑작스럽게 아파서 응급실을 거쳐 입원했거나, 어떻든지 환자에게 입원은 긴장되고 힘든 과정이야. 따라서 환자는 질병에 대해, 검사에 대해, 치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고 설명 듣고 싶어 해. 집을 떠나 병원에 머무르고 있는 만큼 의사가 시간을 내주고 상담해 주기를 기대해.

하지만 많은 경우에 환자의 기대는 빗나가. 의사는 간호사를 통해 주사를 놔주고 여러 가지로 검사를 받게 할 뿐, 환자가 무엇을 바라고 어떻게 느끼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아. 입원한 환자에게 의사가 오는 시간은 아주 잠깐이야. 병실을 돌며 환자를 보는 회진을 하루에 한두 번씩 하는데 환자 각 사람에게 들이는 시간이 외래의 ‘3분 진료’보다 더 짧아. 개인별로 차분한 상담이나 설명을 기대할 수 없는 거야. 여기서 사람들이 다시 한번 병원을 비판하게 돼. 환자에게 이처럼 관심이 없는 걸 보면 그저 돈벌이하는 데가 아니고 뭐냐고 말이지.

어째서 의사가 환자에게 그렇게밖에 못 하냐고? 조금 더 관심 두고 시간을 내줄 수 없냐고? 그래, 궁금할 거야. 실은 우리나라 병원에서 의사 한 명에게 맡겨진 업무량이 무척 무거워. 입원실에 환자가 많이 있어도 외래진료는 멈출 수 없어 하루에 몇 시간씩 진료해야 해. 이에 더해 내과계 의사라면 내시경 같은 전문 검사를, 외과계 의사라면 수술을 해. 수술한 의사에게는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날 때까지 상태 변화를 파악할 책임도 있어. 또, 응급실에서 급한 연락도 받아. 응급환자의 질병이 그 의사의 전문과목에 해당할 때 연락하는데, 만약 환자의 병세가 나빠서 긴박하게 대응해야 하면 만사를 제치고 응급실에 가야 해. 그런 중에 틈틈이 학술지를 읽어 학계의 최신 정보도 살펴야 해. 온종일 쫓기며 산다고 할 수 있어. 아마도 업무가 주는 압박을 직종별로 측정한다면 우리나라 병원의 의사에게는 아주 높은 점수가 나올 거야.

의사를 늘리면 될 텐데 싶지? 맞아, 의사 숫자가 조금만 늘어도 달라질 수 있어. 그러나 병원은 그렇게 하지 않아. 최소의 의사만 고용해서 최대의 업무를 맡겨. 그 이유는 의사를 구하기 어렵고 게다가 의사 인건비가 높아서 병원이 더 고용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하는 걸 의사가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해. 몸이 고달파도 성과급을 포함해 자기 수입을 최대로 올리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의사의 이해관계는 병원과 맞물려.

“결국 돈 얘기인가요”라는 표정이구나. 갑갑하게 들려도 이게 우리나라의 병원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야. 법으로는 비영리라 하지만, 전체 병원의 95%가 사립기관으로서 경영에 필요한 만큼은 이익을 내야 하는 한계에 갇혀 있어(바로가기2). 그렇기 때문에 인건비와 수입 같은, 돈에 관한 판단이 다른 것에 앞서는 거야.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보는 병원의 모습이야. 아주 적은 수의 의사와 간호사가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환자를 진료해.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야 하니 환자 한 사람당 진료하는 시간을 최소로 줄여. 그렇게 환자는 ‘짧고 효율적인’ 진료를 받을 뿐 제대로 설명도 상담도 받지 못해. 비영리이면서도 이익을 위해 돈 계산을 하는 탓에 이처럼 의료의 질이 낮아져.

커다랗지만 허약한 병원

그래도 큰 병원은 좀 다른 것 같다고? 거기에는 의사가 많아서 다행이라고? 그렇지, 티브이 뉴스에서 보면 큰 병원에는 의사가 꽤 많지.

큰 병원에 의사는 당연히 많아야 하고 특히 전문의가 많아야 해. 그래야 중증 질병에 대해 고도로 전문적인 진료를 할 수 있어. 딴 데서는 치료할 수 없는 복잡한 질병, 진단도 치료도 어려운 희귀질환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수십 개 진료과마다 뛰어난 전문성을 갖춘 의사가 여럿 있어야 해.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의 큰 병원 의사 중 상당수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라는 데 있어. 이 의사들은 대학을 졸업한 지 1~3년밖에 안 된 새내기로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받는 중이야. 아직 배우는 중이라서 ‘고도의 전문적인 진료’는 하지 못해. 그런데 이른바 빅5 병원인 서울대학교병원과 서울아산병원 같은 큰 병원에 있는 전체 의사의 40%가 이 ‘전공의’라는 거야. 미국과 일본의 큰 병원에 전공의가 10% 정도인 것에 견주면 지나치게 많아.

왜 우리나라의 큰 병원에 유독 전공의가 많으냐고? 선배인 전문의가 후배를 교육하려는 의욕이 높아서냐고? 글쎄, 그것보다는 전공의가 저임금에 장시간 일하는 노동력이라는 게 더 중요한 이유야. 전공의는 입원환자의 상태를 점검해서 기록하고, 수술을 돕고, 야간 당직을 서고, 전문의가 하는 일을 보조하며 힘들게 일해. 그러면서도 수련 중이라는 이유로 보수는 적게 받아. 그래서 병원으로서는 전공의가 많을수록 유리해. 전공의의 노동이 떠받쳐주는 덕분에 최소 숫자의 전문의로도 진료 실적을 최대한 올릴 수 있고, 경제적으로 이득이 커져서 살림이 윤택해져. 실제로 큰 병원들이 은행에 쌓아둔 돈이 저마다 수천억 원씩이야. 그 돈으로 서울 주변에 거창한 분원들을 짓고 있어.

하지만 젊은 의사를 ‘갈아 넣어’ 얻은 그 이득에는 대가가 따라. 의료가 허약하게 되는 거야. 그걸 드러내 준 충격적인 사건이 2022년 서울아산병원에서 일어났어.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병원에 수술해 줄 전문의가 없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의사 숫자가 많다는 그 병원에 뇌혈관외과 전문의는 단 2명뿐이고, 게다가 그날 사정이 있어 둘이 모두 자리를 비웠던 거야. 뇌혈관 수술은 워낙 정밀한 작업이라 그 분야에 오래 근무해 경력을 다진 전문의가 아니면 하지 못해. 다른 의사들이 다른 방법으로 애써보았지만, 끝내 간호사는 목숨을 잃고 말았어. 병원이 전문의 숫자를 줄여 인건비를 아낀 결과 빚어진 비극이었고, 의료계를 무척이나 부끄럽게 만든 사건이었어. 병원 건물 안에서 쓰러진 간호사도 살리지 못하는 허약한 의료라면 멀리서 구급차를 타고 오는 환자의 생명에 대해서는 과연 어떻겠어.

속상하지? 이처럼 돈에 관한 판단이 앞서는 한, 병원이 크든 작든 다를 게 없어.

필요한 건 영리병원이 아니라는 걸

그래, 이제는 영리병원 이야기를 마저 할게.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영리병원을 몹시도 만들고 싶어 했지만, 국민의 여론은 한결같이 반대였어. 건강이 인권이고 의료는 누구에게나 필요한데, 영리병원이 생겨서 돈을 비싸게 받고 의료를 지금보다 더 돈벌이 수단으로 만드는 것을 사람들은 바라지 않았어. 영리병원이 생기면 ‘서비스가 고급이 된다, 경제가 좋아진다, 지역에 일자리가 많아진다’는 정부의 선전도 효과가 없었어. 정부가 제주특별자치도에만이라도 영리병원이 들어서게 하려고 ‘꼼수’를 썼는데 그것 역시 제주도민의 반대로 실패했어. 결국 자기들이 목적했던 의료법을 고치지 못하고 대통령의 임기가 끝났어. 대통령은 몰랐어도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거야, 필요한 건 영리병원이 아니라는 걸 말이야.

하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아쉬워. 만약 2008년 그때 영리병원에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국민이 바라는 변화를 시작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부터 의사를 조금씩 늘렸다면, 돈에 관한 판단이 병원을 지배하지 않게 할 장치를 마련했다면, 그래서 병원이 말 그대로 비영리 기관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면. 아마도 그랬다면 지금쯤 우리는 더 든든하고 안전한 사회에서 살게 되었을 거야. 환자가 설명과 상담을 지금보다 더 충실하게 받고, 사람들이 병원을 더 신뢰하고, 큰 병원에는 지금보다 전문의가 훨씬 더 많고, 병원에서 쓰러진 간호사도 살았을 거야. 아마 오늘날 전공의의 집단사직 사태에서 비롯되는 의료 공백도 지금과는 양상이 달랐을 거야.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그냥 오지는 않아. 촛불이 일깨워준 것은 여럿이 함께하면 해낼 수 있다는 거였어. 더 나은 의료제도도 마찬가지야. 함께하는 힘으로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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