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구조조정 전문가’ 타이틀과 함께 KT에 입성한 김영섭 대표가 이번에는 서울 소재 5성급 호텔을 포함한 부동산 자산에 메스를 들었다. 비핵심 자산을 매각해 확보한 재원을 막대한 돈이 드는 AICT(인공지능·정보통신기업) 전환에 투자하겠다는 구상이다. 1년 반 전 김 대표 부임 후 KT의 쇄신 작업은 규모와 속도 면에서 거침없다. 대규모 희망퇴직으로 전체 인력의 6분의 1이 정리됐고 자회사로도 대거 전출됐다. 강도 높은 효율화 작업에 내부에서는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부동산 매각에 따른 역효과나 당위성 문제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3조 원’ 규모 서울 호텔·지역 노후 부동산 20곳 매물로
통신기업 KT는 서울 시내 핵심 부지에 5성급 호텔 4개를 보유한 호텔가 ‘큰손’이다. 과거 구리선을 통신망으로 활용하던 시절 KT는 전국 400여 곳에 전화국을 두고 있었다. 통신시설이 집적화, 고도화되면서 2010년대에 전화국 감축에 들어갔고 유휴 부지를 건축, 임대 등 다른 사업 용도로 전환해왔다.
호텔 비주거용 건물 개발과 공급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KT에스테이트를 통한 호텔 사업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전화국 특성상 부지가 유동인구 밀집한 역세권에 위치한 덕이 컸다. 2014년 옛 영동지사 터에 ‘신라스테이 역삼(3성급)’이 들어선 이후 2018년 을지지사에 ‘노보텔 앰버서더 동대문’, 이듬해 신사지사에 ‘안다즈 강남’, 2021년 송파지사에 ‘소피텔 앰버서더 서울’ 등 5성급 호텔이 들어섰고 2022년에는 서울중앙지사 부지에 메리어트 계열의 ‘르메르디앙&목시 서울 명동(5·3성급)’이 오픈했다. 내년 광진구 자양동 KT강북지역본부 자리에는 ‘앰버서더 풀만(5성급)’ 호텔이 문을 연다.
올해 KT는 ‘알짜’로 꼽혔던 호텔 사업을 포함해 부동산 20곳의 매각을 추진한다. 인력 및 조직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에 이어 자산 유동화에 나서는 행보다. 업계에 따르면 KT는 최근 에비슨영, 삼정 KPMG, 컬리어스코리아 컨소시엄을 매각자문사로 선정하고 KT, KT에스테이트, NCP가 보유한 비핵심 부동산 매각 작업에 착수했다. 매각 컨설팅 대상은 △신라스테이 역삼 △노보텔 앰버서더 서울 동대문 호텔&레지던스 △안다즈 강남 △르메르디앙&목시 명동 △소피텔 앰버서더 서울 등 호텔 자산 5곳과 전국의 노후 건물, 관악·동대문·영등포 소재 기업형 임대주택 등이다.
KT는 부동산과 맞바꾼 자금을 AICT 기업으로의 사업 재편에 활용한다는 입장이다. AI와 클라우드 분야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협력 사업에만 5년간 2조 40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실탄 마련과 기업가치 제고는 주요 과제다. KT는 지난해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장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028년까지 연결 기준 자기자본이익률(ROE) 9~10% 달성 목표를 제시하며 “AI IT분야 매출 3배 성장, 연결 영업이익률 9% 달성, 비핵심 자산 유동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연임 위한 ‘단기 성적표’ 과열 시각도
KT 내부의 반응은 엇갈린다. 김 대표 임기 시작 후 1년 6개월간 단행된 인력 및 조직 재편의 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명확한 청사진 없이 우량 자산에 손을 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KT에스테이트는 호텔 부문에서 2023년 1836억 원의 매출을 냈다. 매출 추이를 봐도 2020년 297억 원, 2021년 497억 원, 2022년 1279억 원으로 높은 상승세다.
KT새노조 측은 “부동산 자산은 통신 외 사업분야에서 안정적인 수익원을 창출해온 대표적인 비통신 포트폴리오”라며 “향후 AI 분야 투자 여력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셈인데,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장기 투자 재원을 줄이고 단기 이익 극대화에 치중하는 건 전략적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KT는 지난해 하반기 단행된 구조조정으로 전체 인력의 6분의 1(2800명)이 떠나고 1700명이 신설 자회사로 전출된 뒤 조직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 있다. 남은 인원들도 조직이 통·폐합 등 개편됨에 따라 직무 전환 교육을 받고 있다. 한 KT 임직원은 “전환 직무의 윤곽이 나왔는데 결국 다시 영업 업무다. 김 대표는 신년을 맞아 2일 사내방송을 통해 질의응답을 받았지만 AI 사업과 관련해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그림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며 “구조조정, 자산 매각의 당위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KT가 부동산 대규모 매각으로 자산 유동화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이석채 회장이 2009년 취임 이후 전국 각 지역 부동산에 묶인 자금을 현금화 해 자회사를 지원하는 전략을 펼쳤다. 서울 노량진, 경기 성남 사옥 등 모두 39곳을 팔았다. 매각 금액이 9800여억 원에 달했다.
김 대표가 지표상 단기성과를 입증하는 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대표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이르면 올 상반기 김 대표가 연임 의사를 밝히고, 연임 심사를 거쳐 내년 초 주총에서 최종 승인을 받는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자산 매각을 통한 순이익 확대와 주주배당은 재신임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 고려한 의사결정이 반복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호계 KT새노조 사무국장은 “늦어도 상반기까지는 실적을 내야 하는데 AI 사업으로는 당장 실질적인 결과물을 보여주기 어렵다. 이석채 전 회장의 방식처럼 인력은 줄이고, 팔 수 있는 자산은 팔면서 단기적 성과 만들기에 나서는 행보로 풀이된다”며 “자산 유동화에 따른 영향이 충분히 검토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KT 임원 출신 한영도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재원이 투입된다는 AI 전략이나 MS와의 제휴 내용 등이 지금으로서는 모호하다”며 “단순 유휴 부동산과 달리, 통신 사업보다도 수익성이 높은 부동산 자산인데 처분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주요 사업의 한 축으로 잡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에 대한 KT의 장기적 방향도 불분명해졌다“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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