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에 몰려온 ‘성덕’들

2024-07-04

지난달 말 닷새 동안 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올해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시작 전 잡음이 있었지만, 흥행은 대박이 났다. 총 19개국 452개사가 참여한 가운데 지난해 대비 약 15% 늘어난 15만명이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서 체감한 관람객 중 2030 여성 비율이 80%에 달했고, 폐막 후에도 각종 ‘인증샷’과 후기들이 소셜미디어를 달구고 있다. 가뜩이나 줄어드는 독서 인구에 근심·불안이 큰 출판업계로선 간만에 콧노래가 나올 만하다.

이 같은 흥행 뒤엔 몇 년 전부터 거세진 ‘팝업 전시’ 트렌드가 있다. 이 전시에 와 있는 나, 이런 트렌드에서 뒤처지지 않는 나를 독려하는 ‘인스타 마케팅’이 봇물이다. 그 흐름이 책을 통한 ‘있어빌리티’(허세)로 향한다면 관련 업계로선 그나마도 위안 삼을 일이다. 게다가 도서전까지 찾는 이들은 책을 ‘패션 소품’으로 대하는 걸 넘어 자신의 정체성과 깊이 연결하는 성향이 있다. 온라인에서 당일 배송 가능한 책을 굳이 출판사 부스까지 찾아가 사는 건 비슷한 공감대 속에 연결되고 싶은 욕구 외엔 설명하기 어렵다.

“요즘 젊은 독자들은 소비 앞에 정직하다. 굿즈이건 저자 사인본이건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겠다는 의식이 뚜렷하다”고 출판사 돌고래의 김희진 대표가 말했다. 돌고래에서 나온 정서경 작가(영화 ‘아가씨’ ‘헤어질 결심’ 각본)의 『나의 첫 시나리오』는 2만5000원 정가에도 100명 한정 사인본을 사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섰다. 팬심과 ‘덕질’(취미에 몰입)이 일상화된 세대에겐 저자뿐 아니라 편집자, 디자이너, 심지어 마케터까지 ‘덕질’의 대상이다. 도서전은 이들과 만나는 팬 미팅 현장이니 “○○를 만나 성덕(성공한 덕후) 됐다”는 후기가 줄 잇는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반응-“사기만 하면 뭐하느냐, 책을 읽어야지”. 실제로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밝힌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중에 책을 읽는 사람 비율은 43%이고 연간 독서량도 3.9권에 그쳐 역대 최저다. 세계 최상위 스마트폰 보급률이나 OTT 가입 증가율을 고려하면 새삼스러운 결과도 아니다. 그런데 짚고 넘어갈 것. 어차피 이전에도 구매한 책 다 안 읽었다. 전후 베이비부머를 노렸던 세계문학전집이나 1980~90년대 대학생을 타깃으로 한 사회과학·인문과학 단행본 호황은 그 시절의 ‘있어빌리티’를 정조준한 결과였다. 마찬가지로 지금 세대의 욕망은 개별화된 취향을 콕 집어 리드할 수 있는 소규모 큐레이션에 가 있다. 책은 그걸 매개하는 1차 재료일 뿐이다. 이를 꿰뚫어 본 어느 출판사 부스엔 인스타그램에서 인용한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다.〈Q. 안 읽는 책을 사놓는 사람

을 부르는 말은? 오답: 지적 허영, 정답: 출판계의 빛과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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