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요율이 13년 만에 조정된다. 보증금액 조건에 5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주택의 부채비율(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에 따라 보증료를 할인·할증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깡통전세' 논란이 계속 이어져 왔던 만큼 임대인의 신용정보 심사제도 도입도 검토한다.
26일 서울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교통부와 HUG는 내년께 HUG의 전세보증요율을 상향 조정하기로 최근 의견을 모으고 구체적인 방안과 시기 등을 논의하고 있다. HUG는 이를 통해 올해 4조 원에 육박하는 순손실을 내년 흑자 전환하고 전방위 주거 지원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현행 18개 구간으로 나뉜 보증료율 적용 구간을 24개 구간으로 세분화하고 할인 및 할증을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수도권 전세 계약의 경우 5억 원을 초과하는 사고가 많은 만큼 현재 △9000만 원 이하 △2억 원 이하 △2억 원 초과로 구분된 보증금액 조건에 △5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적정 보증료율을 산출하는 것이다. 부채비율(LTV) 구간에 따른 사고율 차이가 큰 만큼 현재 △80% 이하 △80% 초과로 이원화된 부채비율 구간에 △70% 이하를 신설해 보증료를 할인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HUG에 따르면 부채비율 80% 이하인 주택의 경우 연 사고율이 0.40%에 그치지만 80%를 초과할 경우 무려 3.87%까지 상승한다.
올해 HUG가 RKM한국리스크관리에 의뢰한 '전세보증요율 개선 연구용역'에 따르면 이에 따른 적정 전세보증요율은 0.121~0.339% 수준이다. 예컨대 현재 보증금이 2억 원인 빌라(부채비율 80% 이하)의 경우 현재는 연간 29만 2000원의 보증료를 내면 되지만 앞으로는 52만 6000원으로 상승한다. 반면 보증금이 3억 원인 아파트(부채비율 80% 이하)는 현재 36만 6000원에서 25만 2000원으로 하락한다.
신설되는 5억 원 초과 구간에서는 보증료 할증이 커진다. 위험도가 가장 높은 △5억 원 초과 빌라(부채비율 80% 이상)의 경우 현재 80만 800원에서 무려 1538만 6800원으로 불어난다. HUG의 한 관계자는 "연구용역 결과일 뿐 확정된 요율은 아니다"며 "공공기관으로서 임차인의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만큼 정부·유관기관과 협의해 적정 수준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집주인이 집을 팔아도 대출금이나 세입자 전세금을 다 갚지 못하는 '깡통전세' 물건의 사고율이 높은 만큼 △다주택임대인(물건 5개 초과) 가입 제한 △임대인의 신용정보 심사제도 도입 등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할 예정이다. HUG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연립·다세대주택에 발급된 전세보증은 총 26만 7942건으로 이 중 부채비율이 80%를 넘는 보증이 18만 1972건(67.9%)를 차지했다. 1주택 임대인의 경우 0.49%에 불과하던 연 사고율도 △5건 초과 2.26% △30건 초과 5.77% △50건 초과 6.1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임대기간이 2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증별 사고율은 두 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국토부와 HUG가 처음으로 전세보증요율 상향 조정에 나선 것은 내년 전세보증보험 신규 가입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HUG의 보증보험은 자본금과 연동되어 있는데 3년 연속 순손실이 불어나면서 보증 배수가 급증한 탓이다.
정부는 2023년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을 통해 공공기관 중 유일하게 HUG의 보증 한도 총액을 자기자본의 70배에서 90배로 한시 확대하고, 지난해 3839억 원 현금출자, 올해 7000억 원 현금출자와 4조 원 현물출자를 이어가는 등 지속적으로 자본을 수혈해왔다. 그러나 전세보증 사고액이 △2022년 1조 1726억 원 △2023년 4조 3347억 원 △2024년 11월 4조 2587억 원으로 불어나면서 자본금은 지속적으로 깎여 나갔다.
HUG는 올해 7000억 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자본을 확충하면서 급한 불을 껐지만 사업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정확한 시행 시기는 미지수다. HUG의 또 다른 관계자는 "주거안정 금융서비스 강화와 주택공급 기반 금융확대라는 HUG의 역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보증요율 현실화를 추진하는 것"이라며 "임차인들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조정 수준과 시기에 대해 정부와 긴밀히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