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스케이팅 이해인이 보여줄 올림픽 ‘독기 카르멘’

2026-01-04

2022 베이징 올림픽 선발전에서 3위를 기록해 아쉽게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이해인은 4년만의 도전에서 극적으로 2위에 오르며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되었다. 2023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차지해 김연아 이후 최고 성적을 달성했던 이해인은 이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1년전만해도 불가능할 것 같았던 올림픽 출전을 스스로 쟁취해 냈다.프리스케이팅 연기 마지막 장면에서 빙판에 쓰러진 이해인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키스앤크라이존에서 올림픽 출전이 확정되자 드디어 환호했다. 이해인은 마지막 연기를 통해 올림픽 뿐 아니라 세계선수권 출전 자격도 획득했다. 이해인은 한국 여자 피겨 사상 최초로 6년 연속 세계선수권 출전이란 금자탑을 세우게 되었다.

이해인은 쇼팽의 야상곡 20번처럼 잔잔한 음악을 잘 소화하기도 하지만, 불새 같은 강렬한 프로그램이 더욱 어울리는 선수이기도 하다. 실제 이해인은 강렬한 연기를 좋아한다고 밝힌바 있다. 특유의 독기 어린 연기가 일품인 이해인은 프리스케이팅에서 수많은 명작으로 유명한 '카르멘'을 연기했다. '카르멘'은 피겨스케이팅에서 대표적인 음악이며, 올림픽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프로그램이고, 올림픽 역사에 남은 수많은 '카르멘'을 배출했던 명곡이기도 하다.

'카르멘'하면 떠오르는 1988년 올림픽 카타리나 비트의 연기는 지금도 피겨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냉전이 이어지던 시절 동독의 비트가 미국을 대표하는 데비 토마스와 올림픽 무대에서 같은 음악인 '카르멘'을 연기한 두 사람의 대결은 '카르멘 전쟁'로 불릴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비트가 마지막에 빙판에 쓰러지는 장면은 피겨 역사상 최고의 엔딩으로 남아 있다. 비트 이후에도 수많은 선수들이 카르멘을 연기했지만 몇년전까지 빙판에 쓰러지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이 동작 자체가 카타리나 비트를 떠올리게 하는데다, 비트와 비교되어서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2년동안 엔딩에서 빙판에 쓰러지는 선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카르멘'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이 지나 비트의 1988년 연기가 잊혀져가서 일수도 있고, 전세계 선수들의 안무 대부분을 일부 안무가가 담당하다보니 일어난 일시적인 유행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해인 역시 카르멘의 마지막 장면은 카타리나 비트처럼 쓰러지는 안무로 끝난다.

올림픽에서 보여줄 이해인의 카르멘 마지막 장면이 비트를 떠올리게 한다면, 시작부터 연기 대부분은 러시아 남자 피겨의 전설 예브게니 플루센코를 연상시키게 한다. 플루센코는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 쇼트프로그램에서 실수하며 3위로 출발했기 때문에, 금메달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런 상황에서 보여준 독기 어린 표정의 이른바 '독기 카르멘'은 남자 피겨의 대표적인 명작으로 남아있다. 모든 점프를 자신있게 뛰는 것은 물론, 점프축기 다소 흔들리더라도 어떻게든 착지를 해내는 모습은 플루센코만의 특징이다.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비엘만 스핀까지 구사하는 플루센코의 카르멘은 카타리나 비트의 '카르멘'과는 또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2023년 세계선수권 은메달 이후 이해인은 좀처럼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이해인보다 한수 아래로 평가되었던 일본의 치바 모네가 밀라노 올림픽 메달 후보로 성장했지만, 이해인은 천신만고끝에 올림픽 티켓을 따냈다. 그마나 다행인 건 이해인이 시즌 막판으로 갈 수록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2023년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차지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이해인은 언제나 시즌 초중반에 부진하다가 시즌 막판에 몸상태를 최고조로 끌어올려왔다. 사대륙 선수권 금메달도, 세계선수권 은메달도 모두 시즌 후반에 올린 성과였다. 물론 고질적인 회전 부족을 해결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시즌 막판에 열리는 올림픽의 모습은 그랑프리보다는 훨씬 좋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누구보다 어렵게 올림픽 무대에 나선만큼 이해인은 독기 어린 카르멘을 보여줄 것이다. 올림픽에서 이해인의 연기를 본 누군가가 플루센코나 비트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피겨 스타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해인은 비점프 요소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선수이다. 비운의 주인공 카르멘으로 변신할 이해인이 보여준 스텝 시퀀스는 이해인 연기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인의 밀라노 올림픽 카르멘은 이해인만의 개성이 넘치는 너무나 흥미로운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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