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3 내란 1년이 코앞이다. 헌정을 수호하려는 국민의 결기와 단호한 실천이 겨우 민주공화국을 회복했지만 그 사태가 한국 민주화에 남긴 상흔은 너무나 넓고 또 깊다. 이 질곡에 대해 가장 큰 성찰과 근본적인 개혁의 과제를 감당해야 할 조직이 국군이다. 망상에 사로잡힌 통수권자에게 그 심장부가 휘둘려 내란의 도구로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국군의 오명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뿌리가 깊다. 다만 그 흑역사는 민주화의 결실로 많이 잊히거나 왜곡되었을 뿐이다. 민주화 이전 시대에 분단 체제를 배경으로 반공-승공-멸공이라는 이념의 완장을 차고 야만적 폭력의 위세를 내세워 국정의 배후로 군림한 실세가 유감스럽게도 국군이었다. 지금도 ‘종북’이라는 혐오의 깃발을 들고 ‘그들만의 자유’를 위해 ‘모두의 자유’를 위협하는 헌정 유린마저 서슴지 않는 몽상적 선동가들과 그 추종자들이 어쩌면 그 시대의 유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내란 사태는 국군의 이름으로 공권력의 사유화를 획책했던 실체를 분명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바로 국군의 허상과 실상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국군의 허상은 그동안 그 얼굴로 자처했지만 무도한 통수권자에게 속절없이 휘둘리거나 부화뇌동했던 국군의 수뇌부이고, 그 실상은 이들의 위법하고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허상의 헛된 꿈을 무너뜨린 국군의 몸통이다.
근현대사의 권위주의 체제에서 절대 권력의 숙주는 흔히들 ‘군부’나 ‘신군부’로 불렸는데 이제 그 호명이 옳았음이 증명된 셈이다. 그러니까 국군의 오명은 사실 하나회나 충암파와 같은 사조직으로 상징되는 군부가 감당하는 게 마땅하다. 이름을 강탈당했을 뿐 실제로는 그 몸통으로 남아 있던 국군은 이제 수치스러운 오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이번 내란 사태에 민주공화국을 지켜낸 영웅들은 그 심야에 국회로 달려가 헌정을 지켰던 일반 시민들만이 아니다. 영문도 모르고 동원되었지만 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당혹과 굴욕마저 감내해야 했거나, 그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국헌 문란의 순간에 휴전선에서 한반도의 남단 끝자락까지 변함없이 방위한 국민의 장병들도 있었다.
내란을 극복하고 헌법 가치를 정착시키기 위한 국군의 성찰과 개혁이 시작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헌법이 명령하는 국군의 사명을 전군이 다시 한번 분명히 체화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적 정체성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되 ‘평화적’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헌법은 국군에 이러한 평화주의의 선봉에서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고, 그 실천적 과제가 정치적 중립성의 준수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군이 헌법적 사명을 체화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있었는지 처음부터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 기본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통수권자와 얼치기 정치군인들이 국군의 명예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망발을 사전에 통제하는 데 실패했을 수 있다. 따라서 당장 현실에 맞닥뜨린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망동들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구체적 제도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법·부당한 명령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확보하는 방안이나 항명죄에 대응해 헌법이나 법률에 어긋나는 명령을 내린 상관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대책이 꼭 필요하다. 계엄법이나 군사법제도를 민주공화 헌법의 원리에 걸맞게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국군이 국가의 군대라는 기능적 차원을 넘어 진정한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기 위해 군정과 군령에 민주적 통제를 확고히 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요청된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국군의 조직이나 기본 활동의 기초가 될 국군의 헌법적 사명을 분명히 정립하고 실천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번 내란이 국군의 몸통이 아니라 군통수권자와 국방부 장관의 일탈과 군 지휘부의 부화뇌동에 근본적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전군은 물론 군통수권자와 일반 공직사회, 나아가 전체 사회가 국군의 사명을 일상적 활동에서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의례 등 병영 및 사회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민과 군이 모두 합심해 헌법적 사명에 충실한 국군의 정체성이 전군과 사회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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