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켓값이라도 하라고.”
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 부스 앞에서 만난 청소노동자 박종임씨(77)가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며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아파트 청소를 하느라 집에서 늦게 파면 소식을 들었는데 박수가 절로 나왔다”며 “이제 서로 양보하고 없는 사람도 좀 더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비상행동 등이 주최한 ‘18차 범시민대행진’이 윤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 하루 뒤인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앞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6분 기준 약 1만명의 참가자(경찰 비공식 추산)는 헌재의 윤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에 안도하면서도 “윤석열 파면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계속해서 묻고, 정치·사회적 변화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그간의 불안을 내려놓고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박미정씨(51)는 “윤석열이 감옥에서 나온 이후 매일 집회에 참석할 만큼 간절했다”면서 “당연한 파면 결정이지만 기뻤다”고 말했다. 박여운씨(25)는 “4개월 동안 너무 많은 시간과 돈, 에너지를 썼다”며 “오늘만큼은 축제 분위기로 나왔다”고 말했다.
동료 시민에 대한 염려와 관심도 잊지 않았다. 기한규씨(54)는 “노란봉투법처럼 저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법안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우리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법안들이 통과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경식씨(45)는 “2022년 10월29일날 이태원 참사 당시 ‘대체 국가는 무엇을 했느냐’며 거리에서 분노를 표출했던 기억이 난다”며 “공정과 상식 법의 잣대가 일반 국민보다 고위공직자들에게 더 엄격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세리씨(30)는 “약자들의 아픔을 뒤로하면서 사회가 성장했는데, 그 결과가 차별과 혐오라는 극우로 이어진 것 아니냐”며 “오래 걸리겠지만 성소수자·장애인 등 약자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원씨(20)는 “윤석열 정권에서 이뤄진 차별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성소수자, 노동자, 장애인,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이 켜켜이 쌓인 것”이라며 “차별의 악순환을 끊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파면을 넘어 법적 처벌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녀와 함께 집회에 참여한 김정이씨(56)는 “계엄을 겪은 세대라 (12·3 비상계엄 당시) ‘무조건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국회로 달려갔는데, 그날 헬기가 국회로 들어가는 것도 봤다”며 “법과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온 정경숙씨(62)는 “윤석열과 그 세력들에 대해서도 반드시 책임은 물어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역사를 써야한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갈라진 사회를 통합하기 위해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고등학생 양희승군(16)은 “청소년들이 정치에 참여할 때 ‘대견하다’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호철씨(49)는 “박근혜 탄핵을 거치며 일반 시민들 사이, 일반 시민과 정치지도층 사이의 괴리가 좁혀진 줄 알았는데 이번 사태를 겪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면서 “언론에서도 일방적 화해만 종용할 게 아니라 먼저 소통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혐오와 폭력은 엄벌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혜진씨(37)는 “광장에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고 차이가 있으니까 언쟁과 비판은 당연히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폭력과 혐오로 사회를 교란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름이 아닌 틀림이라는 것을 단호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