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음을 자산 삼아 힙하게 변신

2024-10-24

공간 리브랜딩

‘매끈 목욕 연구소’ 프로젝트

사라지는 목욕탕 문화 보존 목적

세신공간을 소통공간으로 단장

문화 행사·참여형 콘텐츠 진행

종로 여관 정체성 바꾼 ‘새서울’

마감재는 예스러운 연핑크 타일

만화풍 로고·전자식오락실 설치

중년엔 향수 자극, MZ엔 놀이터

도시재생브랜딩 사업

무관심 속에 잊힐 수 있는 공간

지역 특색에 유행 더해 재정의

소비자에 잔잔하지만 깊은 인상

‘뉴턴’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부분 중력을 떠올려 사과 이미지가 연상될 것이다. 이처럼 어떠한 물건을 보고 찰나에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연상 이미지라고 한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데이터베이스를 쌓아가게 되며, 신선한 자극이나 반복되는 경험에 의해 특정한 대상에 대한 연상 이미지가 만들어 진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강한 인상으로 남아 직관적으로 연상될 수 있다는 것은 때에 따라 좋은 의미로, 혹은 그렇지 않은 의미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 것 중 하나가 인지 마케팅이다. 수 많은 기업의 브랜드들이 소비자의 연상 이미지 속에 긍정적인 모습이나 메시지로 각인되고자 보다 인사이트 강한 광고를 하고, 차별화된 포인트의 제품을 만든다. 즉, 브랜딩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사람들의 인식 속에 아무리 획기적이었던 브랜딩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트렌드가 바뀌고 자연스럽게 소비심리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리브랜딩’이다. 기존의 형태는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로 변화를 시도하거나, 조금 더 업그레이드를 필요로 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 리브랜딩의 사례가 점점 더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공간에 대한 리브랜딩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제고하고자 하는 경우를 이제는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리브랜딩은 특정 메시지를 담고 캠페인이나 문화적 바람으로 불어오기도 한다. 정부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에 낙후된 곳을 탈바꿈하여 새롭게 랜드마크화하는 경우이다.

예컨대, ‘새서울 올드앤뉴헤리티지’가 그렇다. 옛날 오래되고 허름한 종로 여관의 정체성을 탈바꿈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여기 중요한 것은 기존 건물을 허물고 완전히 새 건물을 지어올린 것이 아니다. 새서울의 마감재는 연한 핑크색 타일로 덮여있었고, 오늘날엔 촌스러워서 잘 사용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한옥이 오밀조밀 밀집한 낡고 오래된 노스탤지어의 감성은 그대로 갖추고 있는 특색 있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이 공간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엔터테인먼트 겸 식음료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로고는 옛날 빈티지 감성이 묻어나는 호랑이 만화풍의 캐릭터이고, 로고명은 미학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역사가 깃든 유산을 강조한 것이다. 1층 공간으로 들어가면 옛날 전자오락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이 세대를 거쳐온 사람에게는 매우 반가운 향수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엔 재미있는 공간 리브랜딩 사례가 또 하나 있다. 오래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래된 옛날 목욕탕을 소통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 이름도 위트 있는 ‘매끈 목욕 연구소’이다. 기존에 ‘씻는 곳’에서 ‘돌보는 곳’으로 목욕탕이라는 공간 이미지를 새롭게 단장하였다.

필자가 어릴 때에는 바나나우유를 쪽쪽거리며 마시던 동네 목욕탕 감성이 추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명절이면 북적북적 사람 사는 냄새가 참 정겨웠다. 하지만, 바쁜 현대인들에겐 여유를 즐기는 목욕 문화가 수요가 점차 낮아지면서 간편한 샤워 문화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전국 목욕탕 1000여 곳이 문을 닫는 실정이 되었다.

이렇게 점점 사라져가는 목욕탕 문화를 홍보하고 보존하기 위해 부산의 매끈 목욕 연구소라는 곳에서는 옛 목욕탕 공간에서 문화 예술 행사와 참여형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다. 원 데이 클래스, 팝업 전시, 북토크 등 대중들이 편안하게 찾아 함께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활동으로 목욕탕에 새로운 정체성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도시 곳곳에 낡은 공간을 리브랜딩하여 무관심이었던 혹은 부정적이었던 이미지인식을 변화시키는 문화 예술사업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문화 예술이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잔잔하지만 강력한 힘이 아닐까. 새롭게 짓는 것보다 기존 것을 새로이 보이도록 하는 것, 더불어 직접적인 마케팅보다는 소비자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자연스러운 선택과 구매를 유도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리브랜딩의 힘일 것이다.

이렇게 역사와 문화는 고스란히 지니면서도 오늘날 트렌드와 소비 심리를 반영한 브랜드 정체성은 새로이 전하고자 하는 젊은 MZ 세대의 시도들이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다. 도시 재생 브랜딩은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감성과 로컬 특색을 재정의하고 재발견하는 일환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이대로 조용히 사라질 수 있는 문화들을 하나 둘 건져올려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판 문화 예술의 보존과 계승이 아닐까 므흣해진다.

류지희<디자이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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