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쾌락 버튼
누르기만 하면 쾌락을 얻을 수 있는 버튼과 실험용 생쥐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어떤 실험에서 생쥐는 간단히 누르기만 하면 도파민이 분비되어 만족스러운 식사나 성관계 이상의 쾌락을 주는 버튼과 가둬졌다. 곧이어 물과 먹음직스러운 먹이, 건강하고 매력적인 이성 생쥐도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이런 환경에서 생쥐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예상했겠지만, 버튼을 누르는 행위만으로 쾌락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생쥐는 먹이도 먹지 않고 이성에도 관심을 끈 채 끊임없이 버튼만 눌러댔다. 그렇게 버튼만 누르다가 생쥐의 뇌는 서서히 뇌가 망가졌고 내성이 생기는 바람에 버튼을 눌렀을 때 얻을 수 있는 쾌락이 점점 줄어들었다. 생쥐가 버튼을 누르는 속도는 빨라졌고, 결국엔 아무리 버튼을 많이 눌러도 쾌락을 얻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생쥐는 버튼 누르는 걸 멈추지 못한다. 이제는 버튼을 누른다고 해서 예전의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있으면 끔찍한 고통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결국 생쥐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충혈된 눈으로 버튼만 눌러대다 굶어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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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실험용 생쥐보다 더 많은 ‘쾌락 버튼’의 유혹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실험실에서 연구를 거듭해 공장에서 찍어낸, 먹는 사람을 끊임없이 갈망하게 만드는 가공식품들, 담배와 술, 그리고 마약까지. 의지력과 절제로 끊어낼 수 있는 비교적 약한 버튼부터 전문가의 도움과 격리 없이는 끊어낼 수 없는 가장 강력한 버튼까지 손만 뻗으면 누를 수 있도록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2. 음식
위에 언급한 버튼들 중 가장 약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음식부터 살펴보자. 우리에게 에너지와 영양을 공급하는 음식이 우리를 죽이는 ‘쾌락 버튼’으로 돌변하는 건 한순간이다. 라면 한 그릇, 과자 한 봉지, 치킨 몇 조각…. 처음에 우리를 즐겁게 하는 음식들은 몸에 해가 되지 않는 정도의 양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일상에 약간의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서 음식을 먹던 습관이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지는 중독’으로 이어지기가 쉽다는 점이다.
많은 수의 현대인이 스트레스를 받고 온 날 저녁, 치킨을 먹지 않으면 일상을 버틸 수가 없어 치킨을 주문한다. 점심시간 이후 졸린 오후를 견디기 위해 단 커피와 단것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즐거움을 위한 것이던 음식이라는 쾌락 버튼은 어느새 ‘삶을 버티기 위한 쾌락 버튼’으로 변해있다. 처음에는 즐거움을 위한 것이던 음식이라는 쾌락 버튼은 어느새 ‘삶을 버티기 위한 쾌락 버튼’으로 변해있다.
이 수준에서 음식은 더 이상 우리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몇 시간, 지루하고 힘겨운 상황을 버틸 수 있게 해줄 뿐이다. 그보다 더 특별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더 자극적인 맛의 고열량 음식을 더 푸짐하게 먹어야 한다. 그리고 그 특별한 즐거움을 위해 음식량을 늘리는 순간, 일상을 지탱하고자 먹어야 하는 음식의 양도 함께 늘어난다. 그렇게 음식을 먹는 양과 횟수가 늘어나면서 많은 현대인이 비만이 됐다.
출처-<동아사이언스>
3. 흡연욕
음식보다 더 강도가 센 버튼이라 할 수 있는 담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동료들과 어울리려고, 호기심에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그것이 없이는 일상생활이 되지 않는 중독으로 변한다. 어느 흡연자는 흡연 행위와 관련해서 ‘입으로 똥을 싸는 것과 같다’는 재치 있는 이야기를 했다.
흡연 욕구는 쾌락을 갈구하는 욕구라기보다는 ‘배변 욕구’와 같이 그걸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지는 충동에 가깝다는 뜻이다. 무언가에 중독된 상태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담배를 피우고 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흡연자는 쾌락을 위해서 담배를 찾는다기보다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는 상황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담배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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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개비 물어 빨아들이기 전까진 가슴을 옥죄는 고통스럽고 진득한 갈망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다른 것을 생각하거나 느낄 여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흡연 욕구는 배변 욕구와 매우 흡사하다. 다른 모든 중독도 마찬가지다. 중독된 사람은 특별한 쾌락을 원한다기보다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독된 대상을 찾는다. 중독된 사람은 특별한 쾌락을 원한다기보다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독된 대상을 찾는다.
4. 쾌락이 고통으로 끝나다
중독 초기에는 쾌락을 위해 중독된 행위를 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하지 않으면 견디질 못해서’ 그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견딜 수 없는’ 찜찜한 기분은 중독된 자가 영위하는 일상의 고정값이 된다. 깊게 중독되고 나면, 하루에서 유일하게 중독된 것을 취할 때만 그 끔찍한 기분에서 해방되게 된다. 그렇게 해방된 뒤에는 용량과 횟수를 늘리지 않으면 그 해방감은 점점 약해진다. 결국 중독자는 쾌락을 위해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괴로워서, 죽을 것 같아서 버튼을 누른다. 버튼을 누른다고 해서 예전만큼의 만족을 얻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버튼 누르는 걸 멈출 수 없다. 버튼을 누르는 행위가 결국 자신을 죽인다고 해도 말이다.
음식이나 담배같이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약한 버튼’들도 중독되는 순간 ‘그것 없이는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삶’이 시작되는데 마약은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할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여러 가지 실사례나 자료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자료들 속에서 마약에 중독된 이들은 말한다. 마약 없이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교류해도 즐겁지 않다고. 마약 외에 다른 즐거움이 있던 시절로 너무나 돌아가고 싶다고. 이 때문에 어떤 중독자들은 평소에는 마약을 자제하다가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거나 집을 사는 등 기쁜 날에만 마약을 한다고 한다. 마약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기쁨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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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의 늪에 빠지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이 버튼을 누르는 것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 쾌락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중독은 단순히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독자는 그 행위를 자주, 더 높은 강도로 반복하게 된다. 그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복잡하다. 자연스럽게 즐거움은 반감되다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고 남는 것은 폭풍이 지나고 난 자리에 너덜너덜해진 땅과 건물들처럼, 망가진 나 자신과 일상뿐이다.
중독이 주는 즐거움이라는 폭풍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그것이 오기 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땀을 흘리며 땅을 일궈야 한다. 중독으로 이어지는 쾌락 버튼을 누르기는 너무나 쉽고, 우리를 유혹하는 버튼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버튼을 애초에 누르지 않는 것이, 버튼을 눌러버리고 난 후 ‘버튼을 누르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 호기심이든 일탈의 욕구 때문이든, 한번 눌러보고 싶은 버튼이 있다면 꼭 이 점을 되새겼으면 좋겠다. 당신은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갈 때까지 그 버튼을 누르는 것을 멈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