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1층의 ‘대형 무기실’이 전시물 재배치 등을 위한 보수 공사를 끝내고 26일 재개관한다. 6·25전쟁 당시 사용된 탱크, 대포, 장갑차, 전투기 등이 설치돼 어린이들 사이에 높은 인기를 누리는 장소다. 오래 전에 군 복무를 마친 나이 지긋한 예비역 어르신들이 옛 추억에 잠겨 무기들을 바라보는 모습도 종종 포착된다. 전투복 차림의 현역 군인들이 몇몇 전시물과 요즘 부대에서 쓰는 최신 무기를 서로 비교하며 자못 진지한 토론을 벌이는 광경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대형 무기실 리뉴얼링은 1994년 문을 열어 올해로 꼭 30주년을 맞은 전쟁기념관이 야심차게 진행한 사업이다. 재개관하는 대형 무기실은 크게 △전세를 바꾼 무기 △유엔군의 기갑장비 △국군과 유엔군, 공산군의 화포 △유엔군과 공산군의 항공기 △지도자의 승용차 5개 공간으로 구성된다. 6·25전쟁 당시 미 육군의 주력 전차로 쓰인 M4A3E8 셔먼,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된 미군의 LVT-3C 상륙장갑차, 북한군 및 중공군과의 공중전에서 맹활약을 펼친 미 공군의 F-51D 머스탱 전투기 등이 대표적인 전시물이다.
5개 공간 중 마지막의 ‘지도자의 승용차’는 대형 무기 대신 승용차가 전시물이란 점에서 이채롭다. 전쟁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회장 백승주)는 “이승만 대통령과 김일성의 차량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당시 양측 지도자들의 흔적과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고 소개한다. 6·25전쟁 당시 한국을 이끈 이 대통령이 타고 다닌 관용차는 ‘캐딜락 프리트우드 62 세단’이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의전 차량으로 쓰라”며 이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습남침으로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차는 소련(현 러시아)에서 만든 ‘ZIS-110 리무진’이다. 역시 소련 공산당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이 김일성에게 준 선물이다.
김일성 차량은 6·25전쟁 당시 북진하던 한국군이 평양 근처에서 노획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주 중요한 전리품인 만큼 전쟁기념관에 전시되는 것에 별다른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 관용차가 굳이 전쟁기념관에서 김일성 차량과 나란히 서 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 캐딜락 세단은 이 대통령이 하야한 뒤 윤보선 대통령도 의전용으로 썼다. 꼭 ‘이승만 차량’으로 한정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창기 대통령들의 관용차’라고 보다 폭넓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8년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요즘 이승만 기념관 건립 움직임이 활발한데 기념관이 세워지면 그곳으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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