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산 메모리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중국 업체들의 기술 수준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 1위 메모리업체인 창신메모리(CXMT)가 첨단 메모리인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양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DDR5를 양산한 시점이 2021년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기술력이 3년 안쪽까지 좁혀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중국이 본격적인 ‘반도체 굴기’를 이루기까지 아직은 시간이 남아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의 규제로 반도체 공정에 반드시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기와 같은 첨단 장비를 들여오지 못하고 있는데다 트럼프2기 행정부에서 대중 반도체 규제가 더욱 혹독해질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중 갈등이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라며 “구형 반도체 라인을 선단제품으로 전환하고 첨단 기술개발(R&D)에 효율적인 투자를 통해 중국과 확실한 격차를 벌려 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UV 구경도 못하는 中= 24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노광장비 회사 ASML은 최근 미국에서 열린 'IEDM 2024'에서 극자외선(EUV) 장비의 차세대 버전인 하이(High)-NA 기기의 D램 적용 가능성을 소개했다. 이 회사는 D램 공정에 이 기기를 도입했을 때 원가를 30%까지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CXMT 등 중국 회사들이 2019년부터 EUV 장비를 반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갈수록 원가 차이가 더 벌어진다는 의미다.
CXMT가 생산하는 DDR5도 이같은 한계 때문에 수율이 10~20% 수준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반도체 업계의 진단이다. ASML 경영을 총괄하는 크리스토퍼 푸케 CEO는 중국 반도체 기술력에 대해 "첨단 분야에서는 10~15년 정도 뒤처져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중국 내부에서는 적극적인 소재·부품·장비 개발로 규제로 다양한 장비들을 현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생산성과 수율 문제로 원가절감·가격 경쟁력에서 크게 뒤처지고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반도체 공장에 깔린 장비는 껍데기만 미국산일 뿐 유지·보수용으로 갈아 끼운 부품들은 대부분 현지에서 베낀 복제품”이라고 말했다.
◇더 커진 압박 '트럼프 2.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집권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중국 반도체를 더욱 거세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 역시 중국 기업들의 위기 요인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23일(현지시간) "중국의 반도체 지배를 위한 행위·정책·관행에 대한 조사를 개시한다. 이는 통상법 301조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반도체 기업이 천문학적인 당국 보조금을 받고 생산 능력 확장과 저가 반도체 공급으로 시장을 교란 시키고 미국의 경제 안보를 흔들고 있다는 게 조사 개시의 배경이다. 조사 결과는 트럼프 정부의 중국 규제 근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기 집권 시절 중국 반도체 규제를 진두지휘했다. 트럼프 2.0 시대에는 중국 D램의 성장을 두고 보지 않고 강도 높은 관세와 장비 수출 규제를 진행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 때는 규제 리스트에서 제외됐던 CXMT도 제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삼성전자는 CXMT가 넘볼 수 없는 시장을 더 빠르게 공략해야 한다"며 "국내 회사들은 빠른 속도로 5세대 HBM(HBM3E)이나 6세대 제품(HBM4)으로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