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詩 95] “그들의 땀이 있어 우리가 살고 있다”

2025-06-11

서길원 大記者

윤제림 시인(1960년생)

충북 제천 출신으로 1987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함께 읽기> 시인이 여행 중 기사 식당에 들렀을 때 삶에 찌든 나이 든 노동자들이 식당 문을 밀고 들어와 식사를 시키는 광경을 보고 시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다음은 시인이 직접 쓴 시작(詩作) 노트를 발췌 했다.

“그들은 무언가 거룩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들처럼 보였습니다. 저마다 눈보라를 헤치고 귀가한 가장들의 늠름한 표정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식당이 제집의 부엌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오늘도 푸른 들판을 닮은 일터에서 그들의 농사를 짓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이들 덕택에 저는 삽이나 괭이를 들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요. 청소 당번도 맡지 않고 밥 짓고 설거지하는 일 한번 하지 않고, 생애의 절반 이상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저로 하여금, 글 농사를 열심히 짓지 않으면 죄가 될 것이 분명하다는 각성에 이르게 합니다. 제 할 일 대신 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윤제림은 시인으로 살아갑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저녁을 맞습니다.”

시인의 말로 끝내기엔 아쉬워 필자도 몇 마디 덧붙여본다.

"낯 검은 사내들" 이 표현에서 어느 시인의 시에 나오는 ‘손톱 밑이 까만 에미’란 구절이 떠오른다. ‘얼굴이 검다’는 말은 단순히 얼굴이 시커멓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삶에 찌든 얼굴이란 뜻이다.

‘손톱 밑이 까만’도 마찬가지다. 손톱 밑에 때가 사라질 틈이 없을 정도로 밭 일을 해야 하는 농사꾼 아낙이란 뜻이니까.

“모자 벗으니 / 머리에서 김이 난다 / 구두를 벗으니 / 발에서 김이 난다” 머리와 발에 김이 난다고 함은 그만큼 힘든 일을 했음이다, 그에 맞춰 시에는 나오지 않으나 필자의 생각엔 큰 밥솥에선 김이 났을 게다. 또 뜨거운 밥을 입에 넣을 때 입가에서도 김이 났을 게다. 머리의 김, 발의 김, 밥솥의 김, 입가의 김. 네 가지 김이 조화를 이룬 부분이라 생각 든다.

"아버지 한 사람이 / 부엌 쪽에 대고 소리친다, / 밥 좀 많이 퍼요" 아버지는 특별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어느 누군가에겐 아버지로 불릴'이란 뜻을 담은 말이다. 일하느라 지친 노동자에게 밥은 보약이다. 그래서 고봉(수북하게)으로 담아 달라고 요청한다.

육체 노동자는 ‘밥심’으로 하루를 열고 닫는다. ‘밥심’이 있어야 오늘 하루도 거뜬히 힘든 일을 견딜 수 있으니까. 오늘도 어떤 식당인지 모르나 거기서 든든히 한 상 받을 그분들이 진심으로 고맙다. 그들의 땀이 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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