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은 다양한 ‘시간의 층위’를 지닌 도시다.
필자의 일터인 서울시의회에서는 시선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수십, 수백 년을 거뜬히 뛰어넘을 수 있다. 서울시의회 본관 위로는 광화문과 경복궁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시간’이, 아래쪽으로는 덕수궁이라는 ‘대한제국의 시간’이, 그리고 정면에는 고층 빌딩 숲으로 화려한 ‘현재의 시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등을 맞댄 서울 도심의 풍광은 ‘서울다움’의 정체성이자 서울의 매력을 담은 대표 이미지였다. 그러나 최근 한 몸처럼 여겨졌던 도심 속 전통과 현재가 충돌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와 그 입구인 외대문으로부터 약 17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운지구 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그것이다.
높게 올리고 넓게 비우는 ‘서울시의 세운지구 개발 계획’이 그 발단이었다. 시가 고밀도개발로 침체된 도심을 되살리면서 종묘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녹지 축을 복원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자 국가유산청은 즉각 반발했다. “세운지구의 고층 개발이 종묘의 경관을, 세계유산의 품격을 망칠 수 있다”며 반기를 든 것이다.
문제를 이해하려면 공간을 직시해야 했다. 필자는 종묘로 발을 옮겼다. 최근의 논란이 ‘가려진 유산’으로 불리던 종묘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린 덕분인지 평일 오전이었음에도 늦가을의 종묘는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낮은 담장을 감싼 고색창연한 나무 숲이 종묘의 키를 높였다. 광활한 월대 위에서 바라보는 정전에는 어떤 미술보다 뛰어난 여백이, 어떤 음악보다 아름다운 고요가 자리했다. 덕분에 울창한 나무 사이 드문드문 보이던 건물에 시선이 머물 겨를이 없었다.
종묘 미학의 정점인 정전을 돌아 다시 종묘의 대문인 외대문으로 돌아오는 길, 사람의 발길이 끊긴 피폐한 세운상가가 눈 안 가득 들어왔다. 종묘라고 하는 장대한 우주의 입구에는 황폐한 도심이 자리해 있었다. 개발의 시간이 멈춘 십여 년 ‘서울의 중심’은 서울에서 가장 ‘남루한 공간’이 돼 있었다.
종묘와 세운, 두 개의 이미지가 포개질 때 논란의 실체가 선명히 보였다. 시시비비의 문제가 아니었다. 책임의 초점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국가유산청은 개발의 그림자로부터 종묘를 지켜야 했고, 서울시는 도심 개발과 함께 멈춰 선 시민의 삶을 되살려야 했다. 종묘도, 시민의 삶도 놓칠 수 없었던 서울시의회는 질문을 바꿨다. ‘개발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어떤 개발로 문화유산의 가치까지 높일 것이냐’로 말이다.
의회가 문화유산의 보호와 규제 개혁의 해법을 모두 담은 ‘서울시 문화유산 조례’를 마련한 이유다.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국가 지정 유산의 외곽 경계로부터 100m)을 벗어난 곳에 대한 규제 조항을 없애 도시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지점을 모색했다.
서울시도 ‘녹지생태도심’이라는 공존의 대답을 내놓았다. 종묘의 입구를 13만 6000㎡에 달하는 거대한 녹지 축으로 새롭게 연결해 종묘의 역사적·생태적 명맥을 이어가기로 했다. 건축물의 최고 높이(145m) 역시 조정의 여지를 열어뒀다. 높게 올리고 넓게 비우는 비율을 절충해 종묘의 경관도, 개발의 경제성까지 담보하겠다는 뜻을 비친 것이다.
종묘를 지키는 일이 개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되고 개발이 종묘의 품격을 희석시키는 빌미가 돼서도 안 된다. 어느 하나를 포기하는 선택이 아니라 두 가치를 함께 끌어안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그 지혜가 모일 때 종묘와 세운은 갈등의 상징이 아니라 공존의 미래를 보여주는 서울의 새로운 풍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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