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도서관을 가질 것인가

2025-10-21

지난 주말 서울 반포대로 국립중앙도서관은 모처럼 북적였다. 개관 80주년(1945년 10월 15일)에 맞춰 마련한 여러 행사가 동시에 진행돼서다.

열기의 중심은 도서관 본관 왼쪽의 사서연수관 건물. 수백 평은 넘어 보이는 1층의 로비와 국제회의장 공간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책을 사려는 2030과 팔려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약 200팀의 독립출판물 제작자와 창작자 등이 참가한 국내 최대의 독립출판 페어,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17~19일)이다. 독립출판물은 중앙도서관에 납본하지 않아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이 없기 때문에 일반 서점에서 구입할 수 없다. 그런 희소성 때문인지 젊은이들이 몰린다. 독서 관련 행위를 세련된 것으로 인식하는 ‘텍스트 힙(Text Hip)’의 현장이다.

최근 개관 80돌 맞은 중앙도서관

양적 성장 이뤘지만 변화 고민을

공공도서관은 주민 플랫폼 돼야

본관은 진지한 전시로 꾸며졌다.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조선 시대부터 21세기까지 우리 책의 역사와 독서 문화를 시대별로 조망한 ‘나의 꿈, 우리의 기록, 한국인의 책장’ 전이 12월 14일까지 열린다. 1908년 ‘소년’ 잡지 창간호 등 평소 영인본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귀중본의 실물을 볼 수 있다. 2층 문화마루에서는 중앙도서관 80년 발자취를 요약한 ‘시간의 기록을 잇다’ 상설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전쟁 와중에도 귀중 도서 1만1000여 권을 부산으로 후송해 51년 1월부터 도서관을 운영했다는, 한국인들의 유난함을 엿볼 수 있다.

중앙도서관 초대 관장 이재욱과 부관장 박봉석의 해방 직후 행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박봉석은 해방 다음 날인 16일, 전날까지 직속 상관이던 일본인 관장과 담판해 서고 열쇠를 인수했다. 일본인들의 자료 훼손을 막으려는 목적이었으리라는 게, 국립도서관 관보 ‘문원(文苑)’ 1년 치를 분석한 조혜린 전 고문헌과 과장의 설명이다. 이재욱은 45년 말 법률 도서를 이관해 달라는 미군정청의 요구에 맞서 여론전까지 펼친 끝에 지켜냈다. 이들 덕에 해방 후 두 달 만에, 건국 전인데도 국립도서관이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틀을 다진 중앙도서관인데, 현주소는 뿌듯하기도, 우려스럽기도 하다. 개관 당시 1700권가량이었던 장서가 무려 1500만 권으로 늘었다. 도서관에 대한 인식, 국가 대표 도서관의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무리겠지만 1800년에 개관한 미국 의회도서관 장서는 1억7000만권이다.

예산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2023년 984억원에서 지난해 951억원, 올해 930억원으로 작아졌다. 주요 사업비 가운데 도서관 정보서비스구축 운영비가 2023년 275억원에서 올해 229억원으로 가장 많이 줄었다. AI 쓰나미로 도서관 소멸 얘기까지 나오는 마당에 우려스럽다.

중앙도서관은 그렇다 치고 다른 도서관들은 괜찮은 걸까. 세계적인 현상이기는 할 텐데, 서울도서관 오지은 관장에 따르면 오늘의 공공도서관은 혁신의 기로에 서 있다. 반드시 도서관이 고민할 일인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이지만, 양극화와 이념 갈등, AI 리터러시, 기후변화까지 힘겨운 도전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도서관 생태계 구조가 혁신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출간한 『책 읽는 시민이 답이다』라는 책에서다.

오 관장은 서울시 히트 상품인 서울야외도서관을 이끌었다. 책은 야외도서관 사업 홍보에 치중했지만 내부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한국 공공도서관의 만성 사서 부족 현상, 실속 없는 사서 자격증 발급 기관으로 전락한 대학가 문헌정보학과를 꼬집었다. 미래의 사서는 지역 사회의 인구 통계를 바탕으로 이용자들의 관심사와 요구를 수시로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책 빌려주는 기관이 아니라 현실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공공도서관이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방향 전환에 대해 국내 도서관계에는 이미 컨센서스가 있다고 한다.(이용훈 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 중앙도서관은 2022년 미국의 문헌정보학자 데이비드 랭크스 텍사스대 교수에게 ‘한국 도서관의 미래’에 대한 강연 요청을 했다. 그 역시 미래의 사서들이 장서 정리 등 기존 교육을 답습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강연 전문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서지원서비스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데 21일 현재 조회 수가 5000이 넘는다. 전국의 정규직 사서는 1만2000여 명. 현직 사서나 지망생 가운데, 사서직과 공공도서관의 미래에 문제의식 있는 사람들은 어지간히 봤다는 얘기다.

결국 비판은 정쟁이나 보신주의에 빠져 도서관의 변화에 무관심한 위정자와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 도서관을 가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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