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경력 산부인과 의사가 “‘36주 태아 살인’ 재판부 선처를” 간청, 왜?

2025-12-13

“이 사건에 대해 참 슬프다는 생각이고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입니다. 한국에서도 조속히 법이 만들어져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임신 종결에 대해 죄를 묻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피고인들에 대해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재판부가 최대한 선처를 베풀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 심리로 열린 윤모씨(80) 등의 공판에는 40년 이상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대학병원 교수로 일하고 있는 남모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병원장이었던 윤씨와 집도의 심모씨(61)는 임신 36주차이던 산모 권모씨(26)에 대해 임신중절 수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윤씨와 심씨는 제왕절개 수술을 해 태아를 출산한 뒤 미리 준비한 사각포로 덮고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은 지난해 6월 권씨가 유튜브에 ‘총 수술 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올리며 불거졌다. 논란이 커지자 보건복지부가 유튜버와 임신중절 수술을 진행한 의사에 대해 직접 수사를 의뢰했다.

이날 재판에서 남씨는 양형증인으로 나왔다. 양형증인이란 재판부가 양형을 결정하기 위해 참고로 삼는 증인으로 주로 피고인 측에서 범행 동기나 사건 배경 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증인을 통해 선처를 호소한다. 남씨는 “산부인과 의사라면 임신 종결을 요구하는 산모를 진료하는 경험이 있는 건 물론이고, 가족이나 동창 등 주위 사람들이 많이 질의한다”면서 “아이가 잘못되는 경우도 있고 태어나서 생활할 수 없는 기형아도 있어서 그럴 때는 의사로서 임신 종결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남씨는 “증상이 없어서 임신 5개월, 8개월이 되어도 모르는 사람이 있고, 진통 와서야 병원에서 임신 사실을 아는 사람도 있다”며 “초기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임신 종결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남씨는 이 사건 집도의였던 심씨의 스승이기도 하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그는 “산부인과가 필수 의료인데 워낙 어려워서 전공의도 기피하는 상황”이라며 “게다가 2019년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6년째 입법 공백이고, 여전히 현장에서는 수술할지 거부할지를 놓고 혼란도 크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30~50년간 산부인과 의사로서 인구 증가와 여성 건강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다. 판사님이 허락하신다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선처를 베풀어주시기를 간청한다”고 했다. 또 “제도권에서 빨리 법을 정리해 줘야 한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임신종결로 인해 형법으로 처벌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앞서 지난 9월 열린 첫 공판에서 윤씨와 심씨 측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했으나, 권씨 측은 “낙태 목적으로 시술을 의뢰해 태아가 사망한 것은 맞지만 살인을 공모한 것은 아니다”라며 “어떻게 태아가 사망했는지 모르고, 살인에 고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에서도 권씨 측 변호인은 “화학물질을 태아에게 직접 주입해 사망하게 하고, 개복해서 태아를 꺼내는 방법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명선 변호사는 “피고인(권씨)은 태중에서 아이를 사산시키고 꺼내는 것으로 알았던 상황”이라며 “수술 후에 아기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미리 약물로 사산시키고 꺼낸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술 전 지인을 통해 브로커에게 연락했더니 그렇게 말했고, 이후 병원에는 특별히 묻지 않았다. 병원 상담 과정에서 따로 고지받은 것도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권씨는 살인의 고의를 다투고 있고, 이는 중요한 쟁점에 해당하기 때문에 당시 병원 상담실장이었던 정모씨에 대해 향후 증인신문을 진행하겠다”며 “시술 전에 어떤 문답이 있었는지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상담실장에 대한 증인신문 이후 피고인 권씨에 대한 신문도 진행한 뒤 기일을 종결할 계획이다.

검찰은 “구속 피고인들의 구속 만기가 다가온다. 이 점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저희가 특검 사건 여러 개를 급하게 하고 있어서 그것까지 고려하기는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이 사건은 기일이 미뤄질 수밖에 없다. 구속 피고인들에 대해선 다른 조치들도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다음 기일은 내년 1월26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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