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초록을 본 지 벌써 수개월. 곧 봄이 오면 언제 겨울이 있었냐는 듯 잎과 꽃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그래도 당장 초록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요즘이다. 그래서 떠났다. 1100여종 식물이 한겨울에도 초록을 뽐내는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 생태원인 국립생태원은 2013년 12월 문을 열었다. 특히 실내 전시 공간 ‘에코리움’에선 열대·사막·지중해·온대·극지 기후대별 생태계를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다. 국립생태원 입구에 들어서자 앙상한 나뭇가지와 밤새 쌓인 눈이 보인다. 매운바람이 에코리움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에코리움에선 하루 네번 1시간 분량의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누리집에서 미리 신청해야 한다. 기자 역시 전국 각지에서 온 가족 단위 관람객들과 함께 참가했다. 관람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그토록 보고 싶던 꽃망울이 여기 있다.
“다른 세상에 온 거 같아요.”
처음 들어간 곳은 열대관. 따듯함과 함께 습한 기운이 몰려든다.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 속 나그네처럼 두꺼운 외투를 벗어 손에 들어본다. 햇빛을 더 받으려고 경쟁하듯 자란 키 큰 나무들, 그 이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길게 늘어진 커튼담쟁이 속에 있으니 아마존 밀림에 온 것 같다.
국립생태원에선 식물뿐 아니라 생태계를 구성하는 또 다른 종, 동물까지 만날 수 있다.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로 잘 알려진 주황색 흰동가리, 화려한 색깔을 지닌 독화살 개구리, 백살까지 산다는 알다브라육지거북은 사람들을 붙들어둔다. 역시, 찬 바람보다는 더운 볕이 마음을 열고, 멈춰 선 것보단 움직이는 것이 눈길을 뺏는다. 생각해보면 봄이 그렇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사막관에 들어섰다. 더 덥겠다 했는데 웬걸. 시원하다. 겨울에는 사막관도 온도를 10℃ 내외로 유지한다. 뜨거운 사막을 기대했다면 올여름 다시 국립생태원을 찾도록 하자. 유리 온실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실내 온도를 50℃까지 올린다.
사막관엔 높은 기온과 건조한 환경 속에서 생존법을 터득한 생물들이 있다. 선인장은 물을 저장하는 줄기는 통통하게, 수분이 날아가는 잎은 가시로 자신의 몸을 바꿨다. 사막여우는 큰 귀를 통해 열을 식히며 낮에 잠을 자고 기온이 떨어진 밤에서야 활동한다. 임정미 해설사는 “겨울에는 여름을 견뎌낸 알로에가 예쁜 꽃을 피운다”며 “이맘때 국립생태원을 찾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전했다. 집에서 키운 알로에에선 한번도 본 적 없는 주황색 꽃. 너희도 따뜻한 고향에선 꽃을 피우는구나.
향긋한 허브향이 반기는 지중해관은 걷기 좋은 시원한 가을 날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올리브나무 앞에 서니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 섬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임 해설사는 허브잎 하나를 따서 아이들에게 내밀었다.
“와, 진짜 향이 나요.”
손톱만 한 이파리 한장이 10명이나 되는 아이들 입가에 미소를 피어오르게 한다.
온대관은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 기후를 재현한 곳이다. 초겨울 날씨라 외투를 다시 입게 된다. 이곳엔 작은 제주가 있다. 한국 대표 온대림인 곶자왈을 재구성해 아왜나무·동백나무·녹나무를 심고 작은 연못도 만들어놨다. 상류·중류·웅덩이·하류로 나뉜 수조에선 한국의 민물고기 40여종이 살아간다. 부산에서 온 박중헌씨(48)는 온대관을 둘러본 후 “제주로 비행기 타고 갈 필요가 없겠다”며 흡족해했다.
마지막 목적지는 펭귄이 있는 극지관이다. 마침 식사 시간. 펭귄이 뒤뚱거리며 사육사가 주는 먹이를 먹고, 기분이 좋아져 물속을 빠르게 헤엄친다. 서울에서 온 안효근군(12)은 “63빌딩 아쿠아리움이 사라지면서 펭귄을 못 보게 됐는데 서천에서 만나니 반갑다”고 말했다.
1시간짜리 세계 생태 여행은 금세 끝나버렸다. 놓친 것을 다시 찬찬히 둘러보려 맨 처음 열대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봄이 올 때까지 마음에 초록을 꼭꼭 담아두기 위해.
서천=황지원 기자 support@nongmin.com 서천=이종수 기자 leejongsoo@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