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애스모글루(Daron Acemoglu)와 제임스 로빈슨(James Robinson)의 공저인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는 왜 법치에 기반한 사적 재산권 보장과 민주주의 등 ‘포용적 제도’가 정착된 곳에서 한 국가의 성공이 가능한지를 제도적 관점에서 밝히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합리적 토론과 합의를 가능케 하는 ‘포용적 제도’가 ‘포용사회’를 구성하는 근간이자 주춧돌임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포용성의 논의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유럽에서 ‘사회적 배제’와 이를 강화하는 ‘공간적 배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논의가 사회적 포용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후 사회적 배제의 논의는 물질적 궁핍으로 인한 정상적인 시장 참여 및 권리에서의 배제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영역에서의 배제로 확대되었고 이를 통해 낙인화(stigmatizing)되는 과정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그 범주가 확장되었다.
최근에는 OECD, EU, ADB, 유엔 헤비타트(UN HABITAT III) 등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포용 성장(Inclusive Growth)과 포용 도시(Inclusive City)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제시하며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서울시를 중심으로 포용도시에 대한 정책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고 이와 함께 포용도시에 대한 의제 설정이 다른 자치단체로 확산하고 있다.
포용도시를 품고 있는 포용사회의 꽃은 포용복지이다. 포용사회(Inclusive Society)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차별 없이 모든 구성원이 존중받고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는 사람들이 성별, 연령, 장애, 인종, 성적 지향, 종교 등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등하게 대우받고, 그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지칭한다.
개인이나 집단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포용사회는 평등과 다양성 존중, 사회적 참여,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지향하고 있다. 결국 목적으로서 포용사회의 성공과 지속가능성은 수단인 포용복지의 양과 질에 의해 결정된다. 부연하면 포용복지(Inclusive Welfare)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사회적,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여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망이다.
즉 이는 기초적인 생계 지원을 넘어 개개인의 특성이나 상황에 맞는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예컨대 장애인, 노인, 취약계층 등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복지 시스템을 의미한다.
‘포용사회’는 어쩌면 우리 인류가 꿈꾸어 온 이상향일지 모른다. 사회 모든 구성원이 경제적, 사회적 혜택을 공평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복지로서 포용복지는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을 위한 중요한 조건임이 틀림없다. 부연하면, 포용복지는 모두가 함께 성장하고, 소외된 사람 없이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기초이다.
그 때문에 포용사회와 포용복지는 서로를 보완하며 사회적 배제와 불평등 해소를 위해 함께 작동해야 한다. 포용복지가 개인적 삶의 질 향상과 기본권 보장을 다룬다면, 포용사회는 공동체적 연대와 사회적 통합을 통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조성한다.
포용복지가 강화될수록 포용사회가 더 견고해지고, 포용사회가 발전할수록 포용복지의 효과가 극대화됨을 인정한다면, 향후 우리는 힘들어도 더 밀도 있는 포용성의 논의를 사회적 차원에서 지속해서 확대해 나가야만 한다. 비바람 맞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포용사회에서 피어나는 ‘복지의 꽃’ 또한 그러하리라 믿는다.
최낙관 <독일 쾰른대 사회학박사/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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