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와, 정말 귀여워!”
지난 17일 오후 3시경 일본 신주쿠의 번화가. 한 가챠(캡슐토이·이하 가챠) 전문점을 찾은 두 명의 여성이 연신 웃음을 터트린다. 400엔(약 3800원)을 넣어 손잡이를 돌리자 나온 플라스틱 공. 캐릭터 인형이 나오자 “뽑고 싶었던 것이었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2년 전만해도 유명 캐릭터숍과 아이스크림 전문점이 있던 이곳은 빼곡히 설치된 가챠 전문점으로 변신했다. 지난 16일엔 위층 1층 매장까지 신규로 열 정도로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린이들의 장난감으로 치부되던 가챠가 일본에서 몸집을 불리고 있다. 과거엔 학교 앞 과자가게, 쇼핑몰 복도 한구석에 설치됐지만 이제는 전문점 형태로 들어서고 있다. 시장도 커지고 있다. 일본가챠협회에 따르면 2000년도 초반만해도 200억엔(약 1900억원) 규모였지만 2024년엔 1400억엔(약 1조 3400억원)으로 불어났다. 2023년 기준 일본 전역에 설치된 가챠 기계는 약 60만대, 우체통(약 18개) 개수의 3배를 넘어선다. 지름 7㎝ 정도의 작은 플라스틱 공은 왜 폭풍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일까. 오노오 가쓰히코(小野尾勝彦) 일본가챠협회 대표이사를 지난 9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챠의 원조는 미국. 시작은 1880년대 껌과 과자를 자동판매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플라스틱 공 안에 작은 장난감을 넣는 현재의 형태가 된 것은 1940년대의 일이었다.
미국의 캡슐토이가 일본으로 건너온 것은 1965년이다. L.O.하드만이 일본에 캡슐토이를 소개했는데, 페니상회가 도쿄 다이토구에 설치한 것이 최초다. 아이들 발길이 잦은 문방구 앞에 세워진 기계엔 ‘세계 완구를 수집해보자’는 홍보문구가 실렸다. 10엔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찰칵찰칵(가챠가챠)’ 소리가 난 덕에 자연스레 가챠로 불리기 시작했다. 어른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작은 플라스틱 공에 들어있는 소형 완구는 폭풍 인기를 끌었다. ‘어떤 장난감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즐거움에 아이들은 환호했다.

오노오 대표는 “가챠가 일본에 들어온지 올해 60주년으로, 5차 전성기라 할 정도의 붐을 맞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챠 시장의 첫 호황은 1983년 때의 일이다.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기인 이때만 해도 아이들 사이에서 근육맨 지우개와 건담 시리즈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가격은 100엔. 특히 근육맨 지우개는 누계 1억8000만개 매출을 올릴 정도로 기록적인 인기를 끌었다. 디즈니 캐릭터가 가세하면서 1995년엔 2차 전성기를, 컵 위에 올려둘 수 있는 작은 인형인 ‘컵 후치코’의 인기로 시장은 3차 전성기를 맞았다. 4차 붐은 2020년대와 함께 시작됐다. 젊은 여성들에게 가챠가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전문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기준 가차 점포는 약 8만개로, 이 가운데 전문점 형태로 만들어진 곳은 1500곳이 넘는다.
오노오 대표는 이런 폭풍 성장 배경에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코로나19가 있다고 설명했다. 1995년 인터넷의 보급으로 수집이 가능한 ‘소장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인스타그램·트위터 등을 통해 귀엽고 아기자기한 가챠가 주목받았다는 얘기다. 대면 접촉을 기피했던 코로나 시기엔 “전기 안들고 인건비가 들지 않는 비즈니스”로 주목받은 것도 성장에 한몫을 했다.
그는 “현재 이용자의 70%가 여성으로 최근엔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도 시장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일본을 찾는 해외 관광객을 중심으로 가챠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보니 공항이나 아카사카 등 외국인이 많이 찾는 주요 지역에 가챠 점포가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주된 소비자가 아이들에서 어른들로 바뀌면서 가격도 400~500엔 사이로 약 5000원대까지 오른 것도 시장 규모를 키우고 있다.
현재 가챠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것은 캐릭터 장난감. 한국에서 ‘짱구’로 알려진 크레용 신짱이나 귀멸의 칼날, 하이큐, 주술회전과 같은 일본의 유명 만화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오노오 대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가 늘어나면서 쓸모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주는 상품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외성을 노린 가챠가 대표적이다. 그가 들어 보인 것은 300엔을 넣어야만 뽑을 수 있는 대파 전용 바구니. “어떤 대파 주머니가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했다. 그는 지하철 안내 방송이 나는 장난감부터, 소형 비디오테이프를 넣으면 화면에 불이 들어오는 TV, 손으로 돌리는 세탁기와 빙수기, 가설 화장실까지 실물 제품을 그대로 작게 만든 것들도 소개했다. “하찮은 것들이지만 사람들이 몇백엔을 넣고 무엇이 나올지 모르기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엔 ‘타인’의 증명사진 가챠도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전혀 모르는 아저씨 사진을 뽑아보는 것으로 재미로 할 수 있는 가챠니까 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둘러본 전문점엔 지명수배자 사진 가챠, 타인의 이력서 가챠, 맞선용 사진 가챠 등도 나와 있었다.
비 캐릭터 상품으로 기업들과의 협업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 판매하고 있는 과자를 그대로 재현해서 만든 열쇠고리가 대표적으로 한국에서 인기를 끈 허니버터아몬드, 초코파이는 물론 신라면 미니어처도 있다. 50곳이 넘는 기업들이 매달 500개 시리즈가 넘는 신상품을 내놓는데 안전성 등이 확보된다면 캡슐 안에 넣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넣을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오노오 대표는 “재미를 주는 것이 가챠 비즈니스의 특징으로 불황에도 강하다”며 “최근엔 한국에선 캐시리스 결제로 즐기는 가챠가 등장하는 등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