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닥 탁닥 팅’ 타자기 소리가 주는 힐링

2024-07-04

타자기 수리 및 판매 업체 르포

MZ가 반한 또다른 아날로그 감성

톰 행크스도 빠져 240여종 보유해

디지털 피로에 눌린 IT 종사자 포함

주 고객 시인·타이프라이티스트 등

디지털 불신 백인우월주의자도

MZ세대의 중요 트렌드는 아날로그 감성이다.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LP판을 플레이어에 올려 듣는다. 이런 추세에 다시 타자기가 주목받고 있다.

한번 잘못 치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하는 타자기에 MZ세대가 열광하는 이유가 궁금해 유명 할리우드 배우 톰 행크스도 찾는다는 타자기 판매 및 수리점인 타이프라이터 뮤즈를 찾았다.

쇼룸에 진열된 족히 30개는 넘는 아날로그 타자기들 가운데 업소 주인장인 밥 마셜은 선반에서 1972 헤르메스 3000을 꺼내 책상에 앉았다.

‘이, 것, 은, 테, 크, 노, 폰, 트, 입, 니, 다.’

‘탁, 탁, 탁, … 팅’

타자기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 줄 바꾸라고 재촉하는 벨 소리가 그의 쇼룸을 채웠다.

획 굵기가 얇은 소위 ‘타자기’체(테크노 폰트)와 필기체를 오갈 수 있다며 마셜이 으스댄다. 언더우드, 스미스 코로나, 레밍턴, 올림피아 등 굵직한 타자기브랜드 제품들 가운데에서도 그가 애지중지하는 타자기다. 민트색 외관에다 자판은 더 밝은 민트라는 점이 눈에 띄어서다.

‘타자기의 역사’라고 쓰인 타자기에 관한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다. 타자기 모형부터 타자기로 작업한 종이 뭉텅이까지 가게 안은 타자기와 그와 관련된 제품으로 빼곡하다.

6년째 가게를 운영 중인 그의 진열대에는 탭(tab) 기능을 탑재한 타자기부터 탭 기능이 없어 원하는 위치까지 종이를 옮기려고 스페이스 바를 꽤 눌렀을 법한 타자기, 한 개의 자판이 하나의 단어를 이루는 스티노그래피 타자기까지, 가격대도 300달러에서 수천 달러까지 다양한 타자기가 그의 가게 안에 진열돼 있었다.

그의 주요 고객은 작가, 시인, 영화계와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 IT업계 관계자들, 타자기로 그림을 그리는 타이프라이티스트, 아날로그 감성에 취한 젊은이들이다.

시인은 타자기로 쓴 종이를 엮어 한 권의 시집을 만든다. 이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개해 팔로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타이프라이티스트가 타자기의 특정 알파벳으로만 구현한 그림을 보면 그 정성과 노력에 입이 떡 벌어진다. 타자기로 그림을 그리는 타이프라이티스트 겸 콘텐츠 제작자 제임스 쿡이 그려낸 작품은 인물화와 풍경화를 넘나든다.

더욱이 하루 수 시간씩 모니터를 보면서 작업해야 하는 IT업계 종사자들도 그의 단골 중 하나다. 디지털 피로도에 짓눌린 그들은 모니터 없는 타자기에서 안식을 찾는다.

가장 특이한 고객은 바로 디지털 도·감청을 피하려는 백인우월주의자들과 급진적 종교단체 관계자들이다. 그들은 디지털 이메일을 신뢰하지 않는다. 타자기로 작성한 편지가 주요 통신 채널.

이처럼 타자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신제품 생산을 중단했던 업체도 신제품을 선보였고 아마존, 엣시를 포함한 리테일 유통 채널에도 타자기가 다시 등장했다. 오피스디포, 월마트 등 대형 소매업체들도 타자기 판매를 재개했다. 50~200달러대에 아마존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점도 이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방증이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타자기의 매력에 대해.

대답 대신 그는 타자기를 직접 쳐보라며 타자기 한대를 내주었다.

처음엔 틀리면 지울 수가 없어서 한 자 한 자 조심히 눌렀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타자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자판 눌리는 깊이가 깊고 도장 찍듯이 종이에 글자가 새겨진다. 칠 때마다 들리는 ‘타다닥’ 소리도 경쾌하다. 속도가 붙으니 자판 소리와 글쇠의 종이 때리는 소리가 어우러져 신나는 리듬을 만든다.

편리함이 더는 신기하지 않은 현대인들은 타자기와 같은 번거로움에 매료된다.

직접 롤러 압판에 종이를 끼우고, 줄 바꾸기엔 레버를 밀어야 한다. 수정 테이프나 수정액을 사용하지 않고선 지울 수도 없다. 한글 타자기의 경우, 자음과 모음 모드를 수동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종이에 글자를 새기기까지 쏟는 번거로움이 디지털의 편리함에 익숙한 소비자에겐 오히려 색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모니터 없이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글쓰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책상 위 타자기에 비어있는 백색의 종이를 보며 타자 위에 두손을 올리면 마치 작가가 된 듯한 느낌도 일조한다.

타자기만 240개 이상 보유한 톰 행크스는 “타자기마다 고유의 인격(personality)이 있다”고 말했다.

타자하는 사람의 정성과 노력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고 본인에게 전달되는 감동이 다르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글·사진=서재선 기자 suh.jaes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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