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하룻밤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것은?

2024-11-0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너무 심각한 이야기만 하니 술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김 교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하여 미스 최에게 보스에서 친구를 사귀었느냐고 물었다. 보스에는 3총사가 있단다. 현주하고 미경이하고 자기가 손님들이 자주 찾는 세 사람이란다. 현주는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집안이 기울고,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하여 이곳에 나온 아가씨다. 가정교육을 잘 받아서인지 성격도 좋고 예절도 바르고, 또 미인이란다. 그래서 제일 먼저 17평 아파트를 장만하여 자기가 속으로 매우 부러워하였단다. 그러면서 내가 집을 사면 17평보다는 큰 집을 사리라 결심했는데, 이번에 산 연립이 18평이라면서 웃는다.

여자들은 별걸 다 비교하고 질투를 하는가 보다. 미경이는 다른 곳에 있다가 1년 전에 이곳으로 왔는데, 미인인 데다가 남을 잘 도와주는 성격이란다. 세 사람 가운데 나이가 제일 많아서 말하자면 언니로서 인생 상담도 해 주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데, 정작 자기는 돈을 모으지 못하고 옷 사는데 돈을 다 써버린다고 한다. 미경이는 예쁜 옷을 보면 값이 얼마이든지 꼭 사야만 직성이 풀리는 못 말리는 성격이 있어서 문제란다.

둘이 함께 두어 번 건배를 하자 얼굴이 빨개지며 술맛이 나기 시작했다. 노래방 기계가 있어서 노래도 몇 곡 했다. 김 교수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불렀다. 가사가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무작정 당신이 좋아요

이대로 옆에 있어 주세요

하고픈 이야기 너무 많은데

흐르는 시간이 아쉬워

김 교수가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 보라고 하니까 아가씨는 자기가 겪은 재미있는 손님 이야기를 했다. 인천에 사는 목사님이 단골처럼 보스에 왔단다. 차마 인천에서는 술집에 가지 못하고 서울에 원정 오는 셈이다. 그런데 병원 영안실에서 어머니 장례를 치르는데, 갑자기 목사님이 나타난 것이다. 영안실에서 엉겹결에 맞절했다고 한다. 나중에 물어보니 목사님이 술 마시러 보스에 와서 자기를 찾다가 사장님이 알려 주어서 병원까지 왔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어떤 손님이 술에 잔뜩 취해 자꾸 여관에 가자고 하더란다. 그래서 가겠다고 대답만 하고서는 그만 집으로 와 버렸는데, 그 아저씨는 취한 채 여관에 가서는 자기 집으로 전화를 해 자꾸 미스 최를 바꾸라고 해서 나중에 크게 부부싸움을 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어떤 노인이 와서는 자꾸 아들만 하나 낳아주면 자기의 재산을 반절까지 주겠노라고 해서 한동안 곤란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별별 사람이 다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살이가 재미있고 신문 기자는 바쁘게 취재하러 다닐 수가 있는 것 아닌가? 모든 사람이 성인군자처럼 산다면 성인군자가 전혀 돋보이지 않을 것이다. 신문기자는 쓸 기삿거리가 없어 고민할 것이다. 그런 세상이라면 무미건조한 증류수 같은 세상일 것이다. 재미없어서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하지 않을까?

밤이 점점 깊어져 갔다. 김 교수는 술을 많이는 못하지만, 분위기를 즐기는 편인데, 그날은 매우 기분이 좋고 술도 잘 받았다. 평소에는 양주잔으로 한 잔만 마셔도 금방 취하는데, 그날은 세잔을 받아 마셨는데도 취하지 않았다. 미스 최도 계속해서 술잔을 잘도 받아 마셨다. 술집 아가씨가 술을 잘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오리에게 헤엄 잘 친다고 칭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성수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만난 후 처음으로 브루스를 추었다. 가슴과 가슴이 밀착되자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입술과 입술이 접촉하였다. 누가 먼저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밀실에 있다는 사실이 김 교수를 용감하게 만들었나 보다. 술에 취해서라고 이유를 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아가씨가 키스를 유도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두 사람의 입술과 입술이 진하게 접촉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브루스를 두 곡 끝내고 자리에 다시 앉자 아가씨가 반말로 물었다. 그동안 존댓말을 썼는데, 반말은 처음이었다.

“오빠! 한 가지 물어볼까?”

“뭔데?”

“오빠는 왜 여관에 가자고 안 해?”

“섹스를 하면 너하고 헤어질 것 같아서.”

“오빠는 내가 안 좋아?”

“좋지.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은 네가 더 잘 알지 않니?”

“오빠는 다른 남자들과 다른 것 같아.”

“뭐가 달라?”

“다른 사람은 ‘네가 좋다. 그러니까 섹스를 하자.’ 이렇게 말하거든.”

“처음에 말했잖아. 기억나니? 나는 너를 오래 사귀고 싶다고. 나도 남자이니까 너하고 하룻밤을 지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너하고 하룻밤 사랑을 나누면 다음 날 아침에는 헤어지게 될 것 같아. 최성수의 <남남>이라는 노래 가사에 나오잖아.”

오늘밤만 내게 있어 줘요

더 이상 바라진 않겠어요

아침이면 모르는 남처럼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네가 좋지만, 옛날 사람처럼 너를 첩으로 데리고 살 수는 없잖아.”

“그렇기는 해요...”

“너를 진심으로 좋아하니까 섹스하자고 말하지 못하는 거야. 말을 좀 돌린 것 같은데, 어때? 알아듣겠니?”

아가씨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가볍게 볼에 뽀뽀해 주었다. 김 교수는 미스 최에게 “오래 사귀기 위해서 여관에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그것은 김 교수의 진심이 아니고 궤변이다. 로마의 브루투스는 시저를 단검으로 찌른 후에 ‘시저를 사랑했기 때문에 시저를 죽였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는데, 김 교수는 ‘너를 사랑하므로 섹스를 하지 않는다’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말장난이다.

김 교수가 아가씨와 하룻밤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것은 다음 날 아침에 이별할 것을 염려해서가 아니다. 그 뒤에 겪을 격심한 도덕적 갈등을 두려워해서다. 미스 최와 선을 넘는다면, 아내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일요일에 교회에 나갈 수가 있을까? 뒷날 두 아들이 아버지의 과거사를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부끄러울까? 이러한 사태를 김 교수는 두려워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마음은 있지만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다.

시간이 더 흘러서 11시 50분이 되었다. 아쉽지만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다. 김 교수는 뉴욕에서 산 반지를 꺼내어 아가씨에게 주었다. 아가씨는 매우 좋아하였다.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고 감탄한다. 아가씨는 “오빠 정말 고마워!”라고 말하면서 김 교수를 껴안더니 갑자기 설왕설래(舌往舌來)하는 기습 키스를 했다. 김 교수는 순식간에 그만 혀를 빼앗겼다.

정신을 차린 김 교수가 벨을 누르고 웨이터를 불러 계산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양주는 반병만을 마셨을 뿐이다. 아가씨의 말에 의하면 남은 술은 술병에 금 그어 두었다가 다음에 와서 달라고 하면 된다고 한다. 김 교수는 볼펜으로 술이 남은 부분에 금을 긋고 숫자로 ‘1010235’라고 썼다. 아가씨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열열이사모 한다’라는 뜻이라고 풀이를 해 주었다.

술값은 예상외로 많이 나왔다. 일금 30만 원. 교수 봉급으로는 큰 지출이다. 세 시간 동안 즐겁게 보낸 시간의 대가는 싸지 않았다. 더욱이 오늘 술값은 온전히 김 교수의 몫이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김 교수는 카드로 사인을 하고, 아가씨에게는 팁이 든 흰 봉투를 건네주었다.

아가씨는 문밖까지 나와 전송해 주었다. 차가운 밤공기를 쐬니 정신이 들었다. 김 교수는 앞으로 두어 달은 용돈을 절약하기 위하여 구내식당에서만 점심을 먹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렸다. 남자가 부인 아닌 여자를 만나려면 돈이 들기 마련이다. 부인은 공짜지만 술집 아가씨는 절대로 공짜일 수가 없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남편 대부분이 바람피우지 못하는 솔직한 까닭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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