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국경 없는 반도체 연구소 '아이멕'…각국 연구원 700명 파견

2025-05-20

인구 10만 명 남짓의 조용한 벨기에 소도시 루벤. 중심가에서 차로 10분 남짓 달려 도심을 벗어나자 나지막한 숲과 초록의 공원이 펼쳐진 평지 한가운데, 우뚝 솟은 현대식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 반도체 산업 미래를 설계하는 연구소, '아이멕(imec)'이다.

세계 각국은 반도체 기술 패권을 쥐기 위해 전쟁 중이지만, 이곳에서만큼은 국적이 무의미하다. 치열한 경쟁 대신 협력이, 폐쇄 대신 개방이 기술 진보를 이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중립이라는 의미로 '반도체의 스위스'라고 부르는 이유다.

전자신문은 20일(현지시간) 개막하는 아이멕의 연례 기술 포럼 행사 '아이멕 테크놀로지 포럼(ITF)'에 초청받아 벨기에 루벤을 찾았다. ITF은 최신 반도체 기술 동향을 공유하고, 산업의 당면 과제와 미래 혁신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로, 세계 각국 반도체 전문가들이 찾는다.

행사를 하루 앞둔 19일, 루벤 외곽의 아이멕의 아침은 제법 쌀쌀했지만 맑고 상쾌했다. 출근 시간대인데도 도로는 조용했다. 눈에 먼저 들어온 건 자전거 행렬이었다. 연구원들이 줄지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연구소로 향하고 있었다.

첨단 반도체 기술을 다루는 최전선의 연구소에서, 가장 기본적인 이동 수단이 자전거라는 사실은 신선했다.

아이멕은 다섯 개의 주요 건물에 두 개의 최첨단 클린룸, 그리고 다양한 연구시설을 갖추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클린룸이다. 축구장만 한 300㎜(12인치) 웨이퍼용 클린룸(8000㎡)과 200mm(8인치) 웨이퍼용 클린룸(5200㎡)은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한다.

ASML가 협력해 네덜란드 벨트호벤에 설립한 '하이-NA 노광 공동 연구소'와 연계, 반도체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서다. 양산 기준 가장 앞선 2나노미터(㎚) 반도체뿐만 아니라 향후 나올 1나노대도 바로 이곳, 아이멕에서 R&D가 시작된다.

300㎜ 클린룸 내부는 정밀하게 정돈된 150여대 장비들로 가득했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도쿄일렉트론(TEL), 램리서치, KLA 등 세계 유수의 장비 150여 대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장비 사이를 누비며 연구원들이 숙련된 손길로 장비를 제어하고 있었다.

그중 ASML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보통 소재·부품 기업들은 도입에 엄두도 못 낼 장비지만, 이곳에서는 공유의 대상이다. 국내 장비사인 파크시스템스와 HPSP가 공급한 장비도 그 곁에 당당히 자리 잡은 것도 눈에 띄었다.

세르주 비제만스 아이멕 반도체 R&D 수석 부사장은 “지금까지 300㎜ 클린룸에 35억달러(약 4조8650억원)가 투자됐다”며 “연구기관이기에 기업들보다 웨이퍼나 소자의 물리적, 화학적 특성을 정밀하게 측정·검사하는 메트롤로지 장비가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클린룸은 아이멕 주도 연구 프로그램의 테스트를 위해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고, 일부 시간대는 파트너사의 사설 테스트용으로도 제공된다. 아이멕 연구원과 오퍼레이터, 아이멕 회원사 연구원, 장비사 직원 등이 클린룸 내부를 장비를 제어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멕의 위상은 약 6000명에 달하는 임직원수로 가늠할 수 있다. 벨기에에는 그 중 40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박사 과정 또는 박사후 연구원도 850명에 달한다. 각국 반도체 기업에서 700명의 연구자들이 파견와있다.

아이멕 관계자는 “파트너사들의 초기 공동 개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방형 혁신 R&D 플랫폼을 통해 비경쟁(pre-competitive) 연구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호 긴밀하게 협력함으로써 파트너들은 기술 발전을 가속화하고 비용을 분담하는 동시에, 위험을 최소화하고 투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루벤(벨기에)=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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