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한 가지에 나고서

2023-12-05

입동 다음 날, 사랑하는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100세 시대라는데 70도 살지 못하고 가족의 곁을 떠났다.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비바람 불고 나뭇잎이 어지럽게 떨어지고 있었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 한 가지에 나고 / 가는 곳 모르는구나.' 신라 고승 월명사의 '제망매가' 한 구절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

칠 남매 중 유일하게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동생은 부모에게 효도하면서도 형제들과 우애가 깊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어서 엄마 예쁜 옷 사다 주고, 아버지 좋아하는 술과 담배도 사다 드린다며 가발공장에 들어갔다. 온갖 지청구를 다 들어가며 졸린 눈을 비비고 한 땀 한 땀 어렵게 가발을 떠서 힘들게 번 돈을 부모와 형제를 위해 아낌없이 썼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천성이 낙천적이고 사교성이 좋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서 동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착한 동생이, 꽃길만 걸어도 아픈 손가락인데 걷는 길마다 자갈밭이었고 가시밭길이었다. 힘든 공장 생활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한다고 나선 길도 험난하긴 마찬가지였다. 학벌 중심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돈 버는 일이 모두 힘 드는 일이었고 이혼의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그러나 부모님과 형제들 앞에서는 한 번도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았고 늘 밝고 당당했다.

동생한테 참으로 미안한 일들이 많다. 생일도 챙겨주지 못하고 용돈도 주지 못하고 예쁜 옷도 사 주지 못하고 어려울 때 제대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기만 하다. 내가 죽어 다시 만나면 동생에게 못다 한 사랑을 모두 주고 싶다. 마지막 분장을 하고 떠나던 날 곱게 화장한 동생을 보니 어렸을 때 엄마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오빠, 나 이뻐?'하던 말이 생생하다.

"그래, 네가 세상에서 가장 예뻤어. 잘 가거라! 사랑한다."

천국에서는 제발 아프지 말고 가수의 꿈을 이루고 많은 사랑을 받기 바란다.

박진용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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