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농업인에게 사업자 등록 의무를 부과하는 ‘농업인 사업자등록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현행 제도로는 실제 농사를 짓지 않고 농업인 혜택만 받아가는 ‘유령 농업인’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판단에서다. 향후 고령·영세농의 행정 부담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9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현재 농업인, 전문가 등과 함께 농업인 사업자등록제 도입에 대한 논의를 막 시작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농업인 사업자등록제는 농업인이 영농 개시 시점에 작물재배업 등 정해진 업종분류 코드로 국세청에 사업자 등록을 하고 휴업이나 폐업 때는 이를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다. 2000년대 초반부터 도입 논의가 있었지만 조세저항·행정 부담 등을 이유로 도입이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도 농업인을 대상으로 사업자등록제와 비슷한 ‘농업경영체 등록제’가 운영되고 있다. 2008년 농가 소득과 경영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사업자등록제의 대안으로 도입됐다.
농업경영체로 등록될 경우 공익직불제, 농업용 면세유, 농지연금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중복·허위 등록 시 별도의 처벌 조항은 없다.
이 때문에 농업경영체 수가 실제 농업인 수보다 과도하게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데이터처의 농림어업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농가 수는 97만3707가구인데 농림사업정보시스템에 등록된 농업경영체 수는 182만3000개로 2배가량 많다.
농가는 가구 단위고 농업경영체는 개인·법인별로 등록할 수 있는 만큼 경영체 수가 더 많은 것은 자연스럽지만 문제는 격차가 과도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농가는 5.9% 줄었지만, 농업경영체는 5.3% 늘었다. 농업경영체 등록에 따른 혜택을 받기 위해 농지 쪼개기를 하는 농민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농지 쪼개기는 농장주가 농사를 짓지 않는 가족에게도 농지를 나눠줘 각자 경영체로 등록하게 하는 것이다.
정부는 사업자등록제가 유령 농업인을 걸러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사업자로 등록될 경우 소득 데이터를 매년 제출해야 해 농사를 한다고 신고만 해두고 소득은 없는 농가를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인 단위로도 등록할 수 있는 농업경영체와 달리 사업자는 개인 단위로 등록해야 돼 개별 데이터를 확인하는 데도 유리하다. 농업이 국세청에 공식 업종으로 등록되면 농업에 대한 청년층 인식 개선 효과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0월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현재 농업경영체 등록제만으로는 허위 등록자나 유령 경영체를 걸러내기 어렵다”며 사업자등록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도 올해 국정감사에서 사업자등록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농민에게 돌아가는 공익직불제 예산도 꾸준히 늘면서 부정수급을 걸러내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공익직불금 예산은 2020년 기준 약 2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2조9000억원으로 늘었다. 내년도에는 3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공익직불금 부정수급 환수 건수 및 액수도 2021년 113건(1억9780만원)에서 지난해 234건(11억5700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프랑스·미국·일본 등 해외 주요국도 농업인을 대상으로 사업자등록제를 운용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농업인은 영업자 등록 의무가 없는 대신,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일 경우 납세 의무를 부과한다.

농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청년층은 ‘실제 농작을 하는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게 맞다’며 찬성하는 쪽이다. 그건 사업자로 등록되지 않은 탓에 소득을 증빙할 수 없어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다.
다만 고령층·영세농들은 행정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업자등록을 하게 되면 판매액, 거래처, 농자재 구매내역 등을 세무자료로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55.8%에 달한다. 이에 장부 작성 등을 지역 농협이 대리해 행정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서용석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농민들도 등록제의 기본 취지에는 전반적으로 공감하고 있다”며 “다만 일률적으로 도입할 경우 영세농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차례대로 도입하는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업자등록제가 향후 농민 과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현재 농민의 농업소득은 대부분 비과세 대상이다. 벼·보리·밀 등 식량작물 재배로 인한 소득은 액수에 관계 없이 전액 비과세된다. 과수나 채소류 재배로 인한 소득도 10억원 이하까지는 비과세 대상이다. 영세규모의 영농인이 많다는 점, 농산물 거래는 현금 비중이 높아 정확한 소득 파악이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사업자등록제를 시행할 경우 국세청이 바로 소득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소득 파악이 용이해지면 이에 따라 과세 체계도 정비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과세 수단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일부 농업인들 사이에서는 ‘사전 정지 작업’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장에서 여러 의견들이 나오는 만큼 우선 사업자등록제가 많은 농가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인지, 반대 목소리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들어본 뒤 도입 여부를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범사업 참여 전창민 휴브리스 대표 “필리핀 인력 수요 여전… 대기 가정만 800곳” [심층기획-외국인 돌봄노동 시대]](https://img.segye.com/content/image/2025/12/08/20251208514096.jpg)

![저임금 집착·‘강남이모’ 오명… 정책 지웠다 [심층기획-외국인 돌봄노동 시대]](https://img.segye.com/content/image/2025/12/08/20251208515306.jpg)

![외국인도 토허구역서 주택 살 때 자금조달계획서 내야[집슐랭]](https://newsimg.sedaily.com/2025/12/09/2H1NWGNOSK_3.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