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1년 9월 27일 전 세계 조선 산업 판도를 바꿀 미국의 신형 함선이 진수식에 나섰다. 훗날 ‘리버티선(liberty ship)’으로 불리게 될 수송선이 바로 그것이다. 이 함선은 미국이 독일의 침공을 받은 영국 등에 대규모 병력과 함께 엄청난 물량의 군수품을 실어줄 수송선단을 만들려고 개발했다. 리버티선은 기존 수송선보다 간소화된 설계와 규격화된 부품 덕에 낮은 비용으로 빠르게 건조될 수 있었다. 1척당 2~3년 걸리던 수송선 제작 기간이 평균 약 2~3주로 단축된 것이다. 그중 불과 4일 만에 완성된 배도 있었다. 리버티선은 이렇게 4년간 2710척이나 제작돼 세계 2차 대전 전세를 뒤집는 데 크게 공헌했다.
리버티선 프로젝트 성공에는 미국 사업가 헨리 카이저의 역할이 컸다. 후버댐 등을 지어 건설왕에 오른 그는 1939년 캘리포니아에 리치먼드 조선소를 세우고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고안한 공장형 대량생산 체계를 조선 산업에 도입했다. 규격화된 부품들을 외부 여러 공장들에 사전 주문해 제작한 뒤 조선소 내 여러 도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조립하는 혁신을 이룬 것이다. 여성을 고용해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고 저숙련 직원들에게 어려운 리벳 공정 대신 간편한 용접 방식으로 배를 조립하도록 해 작업 효율도 높였다. 그 결과 부품 제작부터 선체 조립까지 전 과정을 조선소 내에서 수공업으로 진행하던 전통 방식보다 비용·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미국은 1950년대까지 리버티선 건조 등에 힘입어 조선 업계 1위를 지켰다. 그러나 미국 조선사들은 제2, 제3의 카이저식 기술·공정 혁신에 나서기보다 정부의 보호막 아래 안주하다가 점차 무너졌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한미 협력으로 상생하고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부활시키자는 취지의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제안해 공감대를 이뤘다. 한미가 중국의 조선 덤핑 공세에 맞서 마스가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리버티선 프로젝트를 롤모델 삼아 과감한 생산성 향상과 신기술 개발, 인력 양성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