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홈플 사태’로 본 사모펀드 민낯 〈끝〉
대형마트 업계 2위의 몰락
대출로 기업 인수 후 차입금 상환 주력
MBK파트너스 경영 책임론 일파만파
네파·모던하우스 등 실패 사례 수두룩
견제·감시 제도적 장치 미비
인수대상 기업 자산 담보로 자금 조달
본업 경쟁력 해칠 수 있어 보완책 필요
전문가 “규제보다 가이드라인 바람직”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불경기라 걱정이 크지만 방법이 있나요.”
지난 17일 서울의 한 홈플러스 매장에서 만난 직원 A씨는 “사모펀드 같은 건 잘 모르겠고 그저 내가 일하는 곳이 하루빨리 안정화됐으면 하는 바람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주말을 맞아 어린 자녀들과 이곳을 찾은 B씨는 “온라인 쇼핑을 주로 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하나둘씩 오프라인 매장이 점점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며 “쇼핑뿐만 아니라 문화센터나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서 자주 왔는데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홈플러스가 건물 임대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점포에서는 이미 곳곳에 자리를 뺀 입점업체들의 빈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지난 3월 국내 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가 회생절차에 돌입하면서 최대주주인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의 경영 책임론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올해로 도입 20주년을 맞은 사모펀드는 기업 구조조정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2004년 도입 첫해 말 4000억원 수준이던 결성 규모는 2023년 말에는 136조4000억원으로 급격히 성장하며 자본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부 사모펀드는 투기적 인수와 재무적 차익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기업사냥꾼’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실제로 홈플러스를 비롯해 네파, 모던하우스 등 MBK가 인수한 또 다른 기업들도 줄줄이 경영악화를 겪고 있어 ‘제2의 홈플러스’ 사태에 대한 우려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인수 기업 줄줄이 흔들… MBK 경영 도마에
19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가 보유 중인 국내 기업은 15개다. 이 가운데 지난 3월4일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홈플러스를 비롯해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 엠에이치앤코(모던하우스) 등 대부분의 기업이 MBK 인수 후 경영악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파가 대표적이다. 네파는 MBK가 2013년 특수목적법인(SPC) 티비홀딩스를 설립해 인수했다. MBK는 1조원에 달하는 인수대금 중 4800억원가량을 인수금융을 통해 조달했는데, 막대한 인수금융 부담을 네파에 떠넘겼다는 비판을 받는다. 2015년 티비홀딩스를 네파와 합병시킴으로써 매년 200억~300억원대 이자 부담을 전가했기 때문이다. 결국 2023년 네파의 영업이익은 140억원으로 전년도 271억원 대비 절반 가까이 감소했고 당기순이익은 적자로 전환했다.

홈플러스처럼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도 있다. MBK가 2009년 인수한 철강구조물 전문업체인 영화엔지니어링이다. MBK는 기술력 강화를 통한 중장기 경쟁력 확보 대신 투자금 배당 및 회수를 위한 단기 실적에 치중했고, 그 결과 인수 5년째인 2013년 큰 폭의 적자를 기록, 이듬해에는 채권금융기관협의회와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2008년 2600억원에 달하던 매출이 2015년 838억원으로 급감하면서 34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자 회사는 2016년 3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MBK는 2017년 영화엔니지니어링을 매각하면서 손을 털었다.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이 같은 MBK파트너스의 경영 실패 사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대출을 통해 기업을 인수한 뒤, 본업 경쟁력 강화보다는 차입금 상환에 집중하며 오히려 기업의 체질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단기 수익 회수에 초점을 맞춘 이러한 경영 방식이 반복되면서, 국내 자본시장 생태계를 왜곡시키고 투자자 신뢰를 떨어뜨리는 등 산업 전반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모펀드는 구조적으로 단기 수익 실현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나 구성원들의 고용 안정성 같은 요소는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며 “비용 절감과 수익 개선을 통해 외형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인 뒤 매각하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산업 생태계 전체로 보면 부작용이 크다. 홈플러스는 사모펀드 구조의 부정적 단면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사모펀드, 규제보다는 감시와 자정시스템 마련돼야”
더 큰 문제는 이를 감시하고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모펀드가 피인수 기업 자산을 담보로 인수 자금을 조달하는 ‘차입인수(LBO·레버리지드 바이아웃)’다. MBK가 역대 최고가인 7조2000억원에 홈플러스를 인수했을 때에도 LBO 방식을 활용해 펀드 순자산(2조5000억원)의 160%인 4조원(승계 대출금 포함)을 부동산 담보로 금융권에서 빌렸다. 결국 MBK가 대규모 차입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핵심 점포들을 줄줄이 매각하면서 마트 본업의 경쟁력까지 약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금융당국은 LBO 제도를 포함해 국내 사모펀드 제도 개선 전반을 위한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가 자본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만큼, 이들의 활동을 ‘규제’보다는 ‘감시와 투명성’ 중심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는 사모펀드의 활동에 비교적 자유를 허용해왔지만 이번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LBO와 같은 차입인수 구조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이 이 부분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도한 규제로 인수·합병(M&A) 시장 전체의 활력을 꺾어선 안 되겠지만 시장의 건전성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견제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홈플러스 사례는 사모펀드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MBK가 과도한 차입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려다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침해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사모펀드는 본래 자금 조달의 유연성과 자산운용 측면에서 장점이 있어, 지나친 규제보다는 최소한의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LBO 등 차입매수 방식 자체를 규제할 필요는 없지만, 일반 제조업체에 대한 과도한 차입을 통한 경영권 확보 후 이익을 편취하는 행위는 일정 부분 제어돼야 한다”며 “유럽처럼 법으로 규정하기보다는 레버리지 비율이나 경영권 인수 후 일정 기간 내 과도한 배당이나 감자 등을 통한 자금 회수를 제한하는 수준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연기금 등 LP(유한책임출자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감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단기 차익만을 노리는 투자 행태를 스스로 규율해나가는 자정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미영·김건호·김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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