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좋은 개살구’인 모·부성 보호제도
“노동시간 단축·성별임금격차 해소”
“육아휴직 복직 이틀 전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제가 원래 일하던 사무실에 책상을 놔줄 수 없고 다른 공간에 책상을 재배치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새롭게 배정받은 공간엔 책상이나 컴퓨터 등 사무 업무를 위한 기본 세팅도 돼 있지 않았다.” (직장인 A씨)
“어렵게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사용했는데 이후 나를 괴롭혀 퇴사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급한 일이 발생해 이틀 연속 오후 반차와 오전 반차를 각각 쓰겠다고 팀장에게 말했지만, 반차 중 하나를 반려시켰다.” (직장인 B씨)
“병원에 초음파를 받으러 가면 전화해서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왜 일 안 하냐고.” (직장인 C씨)
10일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지원을 받아 발간한 ‘임신·출산·육아가 가능한 일터를 위한 제언’ 보고서를 보면, 직장인들은 여전히 모·부성 보호 제도를 온전히 활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월부터 지난 5월까지 접수한, 신원이 확인된 ‘임신·출산·육아 갑질’ e메일 제보 41건을 분석한 결과 사용자 갑질 유형(중복집계)은 임신·출산·육아를 이유로 한 직장 내 괴롭힘이 63.4%로 가장 많았다. 부당평가·인사발령(31.7%), 단축 근무 등 거부(24.3%), 해고·권고사직(12.2%), 연차사용 불허(12.2%) 등이 뒤를 이었다.
직장갑질119는 제도와 현실 간 간극을 줄이기 위해 우선 노동시간 단축과 공짜노동 관행 근절이 필요하다고 봤다. 직장갑질119는 “육아기 단축근무를 신청해 법에 따라 6시간씩만 일할 경우 동료들이 분담해야 할 노동시간과 업무량은 당초 법이 예상한 것보다 더 길고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이 구조 속에서는 제도를 활용하는 데 ‘성공’한 노동자조차 업무 분담이나 조정이 되지 않아 결국 집에서 일을 하게 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성별 임금격차 해소와 육아휴직 급여액 상향도 개선 과제로 꼽았다. 직장갑질119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남성이 휴직을 하는 것은 큰 경제적 손실이다. 반면 여성은 같은 이유로 육아를 더 많이 감당하는 ‘모성 페널티’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고 짚었다.
직장갑질119는 “노동자가 신고를 해도 사업주가 근로감독관 지시에 따라 뒤늦게 조치만 하면 불이익을 입지 않는 현행 노동행정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며 고용노동부의 적극행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소규모 사업장 실태 파악도 개선 과제로 꼽혔다. 남녀고용평등법은 2019년 1월부터 5인 미만 사업장에 전면 적용됐지만 노동부의 ‘일·가정양립 실태조사’ 표본사업체 선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되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제도 사용의 어려움, 제도의 평균 사용일수 등 중요한 데이터가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