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재능낭비인데 웃음이 난다

2025-01-10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사람에겐 D와 A(D and A) 중 하나만 있나요? D와 A가 다 있나요?”(진행자)

“D와 A가 아닙니다. DNA입니다.”(짐 알칼릴리 서리대학 양자물리학 교수)

“저한테 DNA가 있는지 딱 보면 아나요?”(진행자)

“당연히 있죠. 살아있는 유기체니까요.”(알칼릴리)

“제 친구 폴이 새 생명체를 만들겠다고 자몽에 자기 DNA를 넣었어요. 실험 도중에 과일 장수에게 맞았어요. 과학은 왜 그렇게 논란이 많나요?”(진행자)

황당무계한 질문으로 세계적 석학을 당황하게 하는 진행자는 영국의 방송인 필로미나 컹크입니다. 컹크는 무려 영국 공영방송 B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진행합니다.

너무 놀라진 마세요. 컹크는 배우 다이앤 모건의 ‘부캐’니까요. 컹크는 노벨상 수상자나 케임브리지·옥스퍼드대 교수같이 저명한 지식인을 초대해 터무니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산전수전 겪은 석학도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다행히도 인터뷰 장소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은 없더군요. 이런 지식인들을 불러서 ‘재능낭비’ 시켜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넷플릭스 <컹크의 색다른 인생 이야기>는 컹크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중 하나입니다. 일종의 가짜 다큐멘터리기 때문에 ‘모큐멘터리’라 할 수도 있고,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코미디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시작은 전형적인 BBC풍 지식 다큐멘터리 패러디입니다. ‘인간은 어디서 왔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와 같은 거대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합니다. 챕터 순서도 그럴듯해 창조, 죄와 구원, 인체의 안과 밖, 죽음 등으로 이어지고, 이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저명한 신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의학자, 미술사학자 등을 초대해 묻습니다. “신이 우리 생각을 다 안다고요? 개인 정보 침해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니체도 죽었죠.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요? 혹시 범인을 지목했나요?”

인터뷰 사이에 나오는 컹크의 내레이션은 꽤 풍자적이면서도 핵심을 찌릅니다. “구약성경에선 신이 고작 7일 만에 세상을 창조했다고 한다. 우리와 달리 아이폰이 계속 울리며 신을 방해하진 않았다고 한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한 뒤 인류가 직면한 허무주의도 다릅니다. “제가 어떤 남자랑 데이트했는데 20분쯤 지나니 자기는 허무주의자고 인간 존재는 헛된 거라면서 데이트를 계속하는 건 의미 없다며 가버렸죠. 밥값도 제가 냈어요. 그 남자는 허무주의자일까요 그냥 양아치일까요?”(컹크) “아마 둘 다겠죠.”(루스 창 옥스퍼드대 철학 교수)

영어식 언어유희가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지만, 이어지는 우문(愚問)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납니다. 이런 황당한 질문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대단한 코미디 감각이 있어야 할 테니까요. 아울러 “지구는 평평하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낙선한 지난 선거는 부정선거다” “탄핵 집회에 중국인이 대부분이다” 같은 주장을 믿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컹크의 질문이 그리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상영시간이 70분 정도라 보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컹크의 유머가 마음에 든다면 5부작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를 이어서 봐도 좋겠습니다.

‘영국식 유머’ 지수 ★★★★ 폭소는 아님

‘지식과 교양’ 지수 ★★★ 유머의 배경이 되는 목차와 구성은 꽤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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