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긍긍하지 않는 삶을 위하여

2024-07-04

다시 정읍에서 삶을 꾸려온 지 올해로 만 5년이 되었다. 열다섯에 떠나 서른다섯에 돌아왔으니 20년 만이다. 정읍은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이 서넛 생긴 것 말고는 어린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시내 풍경을 보며 근근이 명맥을 이어온 옛 도시의 모습을 본다. 오히려 쇠락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나는 왜 이곳으로 돌아왔을까. 아무것도 명확히 하지 않은 채로 귀향을 결심했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전전긍긍하지 않는 삶을 위해서. 5년이 지난 지금 좌충우돌 끝에 이제야 땅에 발이 닿은 기분이 든다. 무엇이든 내가 선택하기만 한다면 내 것이 될 줄 알았던 시기에는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기회가 있는 곳 에서는 공부를 할 때에도, 돈을 벌 때에도 돈과 시간과 노력 등등을 쏟아부어야만 했고, 가족을 이루어 선택과 집중을 통한 안정감이 겨우 생겨날 즈음에는 출산과 육아라는 인생 최대의 고비가 찾아왔다. 나와 남편은 아이와 같이 행복하게 지내고 싶었고 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그것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나누었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과연 원하는 만큼의 행복을 구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분명한 건 돈이건 시간이건 더 가져야 했고, 가지지 못하면 불안할 것이었다. 우리가 그간 얻은 것을 구하던 방식으로는 평생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이루어도 부족한 삶. 발을 동동 구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안을 안고 전전긍긍하는 삶은 애초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누구의 딸이 아닌 내 이름으로 살고 싶어 떠났던 고향이었다. 돌아와서 보아도 여전히 누구누구의 딸로 살아야 할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는 어디서건 내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 하는 묘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을 해야지, 정한 바도 없이 덜컥 삶의 장소와 방식을 바꾸고자 했으니 분명 앞길이 캄캄했지만 불안함을 안고 살지는 않을 것 같은 믿음이 있었다. 나와 남편이 그동안 공부하며 일하며 얻은 것들은 여기 어딘가에서 분명히 쓰임새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다행히도 나와 남편은 그간 쏟은 노력의 결과물들로 가족을 건사하며 지낼 수 있었다. 이름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을 가진 남편은 특유의 성실함과 전문성으로, 나는 나대로 쌓아둔 실력을 풀어 부모님의 이름이 아닌 내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지난 5년간이었다. 물론 부모님의 이름은 여전히 내 이름의 한켠을 장식한다.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5년이기도 했다.

귀향의 거창한 이유를 찾아보려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아무리 떠올려도 우리의 선택에는 큰 동기가 없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이루어진 일의 연속이어서 원래 세웠던 계획이었나, 싶기도 하다. 넉넉하지 않지만 우리는 부자가 되려고 정읍에 온 것이 아님을 종종 돌이켜본다. 지금의 상황은 돈만으로는 얻어낼 수 없다. 작은 소도시의 삶은 대체로 잔잔하고 평화롭지만 그 덕분에 사소한 것에도 기쁨을 느낄 수가 있다. 40년도 더 된 노포임에도 기다림이 짧은 맛집, 피 터지는 예매와 전혀 상관없는 여유로운 영화관람, 귀갓길에 선물처럼 나타나는 내장산의 노을처럼 지나치게 사소한 일상들을 성글게 이어간다. 정읍에서의 삶에 조금 더 성실해지는 이유들이다.

/유새롬 작은새책방 대표

△유새롬 대표는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언론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정읍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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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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