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 3종·헌혈로 건강·나눔 실천… 원광중 교장 퇴직 후 시인·강사로 활동

<고비, 나를 달아나게 하고 다시 돌아오게 하다>
모래와 태양과 바람의 나라. 그 안에 숨어 있을 나를 마주하러 간다. 마침내 고비 사막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하루에 50킬로미터씩, 사흘간 150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 울트라마라톤. 출발 전에는 몰랐다. 그 광활한 땅이 내게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 40도를 웃도는 무더위와의 싸움이 어떤 고통을 안길지. 그러나 집 떠나온 마음은 이미 그곳을 향해 있었고, 나는 달려야 했다.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25인승 미니버스에 탈 때까지만 해도 낯선 땅에서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는 게 설레기만 했다. 남고비 사막까지는 대략 10시간이 넘게 걸렸다. 먼지 풀풀 나는 길을 달리다가 들판에서 도시락으로 점심과 저녁을 때웠다. 창밖에 펼쳐진 대초원은 여태껏 보지 못한 장관이었다. 문득 누군가 말했던 몽골사람들 시력은 5.0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아버지를 기다리던 딸이 저만치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를 보고 소리쳤는데 3일 후에 도착했다는 그 넓디 너른 평원.

첫날, 고비의 아침은 놀랍도록 조용했다. 적어도 내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마저 자취를 감췄다. 오직 발끝에 밟히는 미세한 모래의 푸석거림과 심장의 박동만이 존재했다. 출발선에서 잔뜩 긴장한 채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는 내게 되물었다. '정말 괜찮겠지?'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을 떼자,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발은 앞으로 나아가고 모래는 발을 잡아챘다가 놓았다. 그 과정을 무한으로 반복했다. 바닥이 평평해 보여도 곳곳에 작은 모래 언덕과 패인 웅덩이에 발목이 꺾이는 아찔한 순간이 이어졌다.
갈색의 지평선 위, 검은 한 줄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낙타와 말, 염소가 주인이었을 그곳에
천적은 단 하나, 인간뿐이었다. 낮이 되자 고비는 얼굴을 바꾼다. 태양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내리꽂히고 그늘은 존재하지 않는다. 땀은 말없이 등을 적시고 모자에 밴 짠 내는 고통의 열기였다. 물을 아끼는 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었다. 5킬로마다 나타나는 보급소 그곳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목숨이 머무는 자리였다.
저만치는 낙타가 걷고 양 떼가 풀을 뜯는 한가한 초원처럼 보이지만, 다가갈수록 푸석한 모래밭과 자갈길이 우릴 맞이했다. 바람은 그 소금기 섞인 땀이 채 마르기도 전에 얼굴을 태웠다. 속눈썹 사이로 들어오는 모래 먼지를 털어내며 우리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동료들과 많은 말을 나눌 수 없었지만, 가끔 건네는 짧은 격려 한마디와 서로의 눈빛 거친 숨소리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30킬로미터쯤 지나서부터는 햇볕보다 마음과의 싸움이 더 힘들었다. '이걸 왜 시작했을까'라는 질문이 모래산처럼 밀려왔다. 고통은 발끝에서부터 기어 올라와 온몸을 감쌌고 그 순간마다 나를 붙잡아준 건 오직 나 자신뿐이었다.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고생은 내 몫’이라며 나를 다독였던 출국 전의 다짐을 떠올렸다.
첫날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고비의 바람이 스쳤다. 마치 커다란 보상이라도 안기듯. 40명이 넘는 참가자들 가운데 나만큼 약해 보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40도가 훌쩍 넘는 땡볕을 이고 무심하게 달리는 듯 보이지만 범할 수 없는 내공 앞에 절로 고개를 숙였다. 허기진 몸으로 수박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내가 내게 말했다. "그래, 해냈다. 하루는." 하지만 앞으로 이틀이 더 남아 있다.
달리는 일에 게으름 부리던 날이 있었다. 훈련량이 턱없이 부족해서 산더미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았다. 고질적 무릎 관절염 때문에 지난가을부터 훈련다운 훈련을 하지 못했다. 나아가야 할 기대를 저버리고 제자리만 맴도는 날들. 때로는 그나마 제자리도 아닌 나태라는 수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견디다 알게 되었다. 속으로만 삼켜왔던 갈망을. ‘내 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퇴직하면서 마음에 그렸던 꿈 하나. 드림 리스트 맨 위 칸에 새긴 고비사막 울트라마라톤 대회. 거기를 달리는 일에 도전하기로 했다. 빠르게 달릴 수는 없지만, 걷듯 달리고 발자국을 남기면 바람이 그 자취를 지워주는 길. 거기에서 중요한 건 몇 등인지가 아니라 무사히 완주했는지에 입을 모으는 것이다.
둘째 날 아침, 발은 이미 부풀어 있었고 무릎은 삐걱거렸다. 오늘은 고비의 상징 쌍봉낙타 코스가 우릴 기다렸다. 붉은 언덕을 하염없이 오르고 내려와야 했다. 수북하게 쌓인 모래밭을 피하면 울퉁불퉁 솟구친 자갈길이 고개를 내밀었다. 바짝 마른 초원을 달릴 때는 투혼도 인고도 멀찌감치 달아났다. 빚쟁이처럼 갈증이 몰려왔고, 가죽이라도 벗기려는 듯 햇빛이 등을 내리눌렀다.
하늘의 신도 어쩌지 못한 곳, 수십 킬로를 달려도 몸 쉴 그늘 한 조각 찾을 수 없는 척박한 땅이었다. 하지만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내 삶에 스쳐 간 사람들이 있고 조용히 자리 잡은 이들도 있다. 내가 마음을 비우고 다가갔을 때 그들은 어느새 내 안에 머물렀다. 나를 기다려주고 응원해 준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었다.
달리기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독한 운동이다. 하지만 사막을 혼자 달린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처절한 싸움이었다. 전날보다 더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고 몸속 수분이 마르듯 의지도 증발해 갔다. 이쯤 되면 더는 체력 싸움이 아니었다. 마음의 근육이 필요했다. 그날은 말수가 줄었다. 옆 사람과 눈빛만 나누고 서로 거친 숨소리로 안부를 대신했다. 짧은 눈맞춤 속에 '우리 모두 이겨내고 있어'라는 교감이 전해졌다. 그건 어떤 말보다 진한 연대였다.
셋째 날, 마지막 50킬로. 새벽 공기조차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고비는 익숙해졌다. 동시에 고비는 나를 한껏 몰아붙였다. 근육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고, 대회 내내 시달린 엄지발톱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열기는 사방에서 옥죄고 타는 목은 냉수를 갈망한다. 그러다가 여기는 고비의 한복판이라고 나를 다스린다. 중간 보급소를 지나며 한참을 걷기만 했다. 달리기란 단어조차 사치로 느껴졌다. 바로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잠잠했던, 도망치고 싶던 나의 열망이 마침내 방향을 틀었다. 더는 달아나는 게 아니라 마주하는 일이 되었다.
아득한 지평선 위. 사람들과 자동차 한 무리가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대장정의 마침표가 새겨진 그곳을 향해 신들린 듯 달려갔다.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 눈물이 터질 줄 알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래도록 숨을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야생의 바람이 내 몸을 감쌌다. 그 아래에서 나는 더는 흔들리거나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강한 자가 버티는 게 아니다. 버티는 자가 강한 자라는 사실을 몸으로 증명한 순간이었다. 사우나에서 흘리는 땀방울보다 두 발로 달려 흠뻑 젖는 행복을 만끽하며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순간을 가만히 껴안았다.
사흘간 150킬로미터를 달리며 얻은 건 기록이나 명예가 아니었다. 상처받고 아프고 흔들리면서도 결국 '완주한 나'를 만났다. 달리다 보면 몇 등 했는가는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 길에 마침표를 찍은 자신이 중요해진다. 삶도 다르지 않다. 최선을 다하면 중간은 간다. 기록에 마음을 비우니 달리기가 더 재미있다. 욕심을 버리니 행복이 배가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고비의 들풀, 도마뱀, 낙타 떼, 그리고 쏟아지는 별빛. 그것들은 이제 사진보다 선명하게 내 안에 남아 있다. 때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 가장 강렬하다. 나는 그것들을 글로 옮기기엔 아직도 부족하다. 다만, 누군가 이 여정을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고비에서 나를 만났다.”
대회 마지막 날, 팀장 회의가 한창일 때였다. 주최 측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막에서 우리의 발이 되어 줄 버스의 연료가 곧 바닥날 거라고. 곁에서 물었다. “주유소는 얼마나 떨어져 있죠?” “한 시간쯤 가면 있습니다.” “그럼 일단 그곳까지만 가면 되겠네요?” 그 순간,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한국인다운 반응이네요.” 하지만 주최 측은 웃지 않았다. “그 주유소에 기름이 없을 수도 있어요.” “설마요?” “여긴, 고비입니다.” 그 한마디는 우리가 생각하던 ‘가능성’이 이곳에선 ‘보장’이 아니라는 걸 알려줬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거기에 남긴 발자국은 바람이 지워버렸고 떨군 땀방울은 태양이 삼켜버렸다. 하지만 내가 달렸던 길이 이웃의 삶에 작은 불쏘시개가 된다면 그보다 더 값진 일은 없겠다. 바람의 고장 고비가 누군가에게도 달아나고 다시 돌아오는 길이길 바라며 오늘도 걷고 달릴 채비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