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공교육으로 아이돌 키운다" K팝 고등학교를 가다

2024-09-18

[비즈한국]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깊다. K팝의 상징인 아이돌은 이른 나이에 발탁돼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데뷔조차 못 한 무수한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즈한국은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했던 문제점을 짚고, 다각도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을 만드는 이들이 건강해져야 K팝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

K팝 고등학교 학생은 아이돌 데뷔를 못 해도 실패가 아니다. 한 번의 실패로 방출되는 아이돌 연습생이 아닌 학생이니까. 아이돌이 아니어도 K팝과 관련된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열려 있다. K팝 산업과 관련된 미디, 음악분석, 작곡 등​ 다양한 과목을 배워서 대학도 갈 수 있다. 한 번 실패로 기회비용을 잃지 않는다. 우린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박병규 ‘한국K-POP고등학교’ 교장은 기획사 아이돌 육성시스템과 한국K-POP고등학교의 차이점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K팝의 위상이 높아지며 아이돌 연습생을 키우는 사교육 열풍이 거세다. 과열되는 경쟁에 연습생 나이는 점차 어려지며 청소년 인권은 사각지대로 몰린다. 정규교육 과정을 포기하면서까지 기획사에 들어가고자 하는 아이들도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이 과연 아이돌 연습생을 키워낼 수 있을까. 사교육 시장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비즈한국은 지난 7월 말 한국K-POP고등학교​를 방문해 질문을 던졌다.

#국내 첫 케이팝 특성화고, 교육비 무료

현재까지 아이돌 연습생과 관련된 교육은 철저히 사기업과 사교육에 의존한다. 연습생 육성 과정을 대부분 기획사가 도맡았으며 최근에는 위탁을 받은 학원(아이돌 아카데미)이 그 역할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 사실상 육성이라는 의미로 수년 동안 연습생을 가르치는 기획사는 교육기관이자 학벌로 작동한다. 하이브, SM, YG, JYP 등 4대 기획사에 ‘합격’한 것 자체가 연습생에겐 최고의 스펙이 됐다. 건강권, 학습권 등 청소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는 ​데뷔라는 목표 아래 ​묵살되는 게 현실이다.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뒤 정규교육 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결국 학교를 그만두는 연습생들도 늘고 있다. 아이돌 지망생 지윤(가명)은 지망생 생활을 하면서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버거워 자퇴하고 지금은 기획사에 들어가기 위해 연습에만 몰두하고 있다.

부모들의 부담도 갈수록 늘어난다. 지난해 대형 기획사에서 만든 K팝 아카데미의 아이돌 정규 과정은 한 학기 비용이 최대 1000만 원 정도로 알려진다. 돈을 내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1차 서류평가와 2차 오디션에 합격해야만 등록이 가능하다. 지망생들은 ​대부분 ​아이돌 아카데미 두세 곳에 주중, 주말반도 수강한다. 이렇게 막대한 돈을 지출해도 기획사와 연습생 계약을 맺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으로 아이돌 육성을 표방한 한국K-POP고등학교​가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K-POP고등학교’는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에 자리한 국내 최초의 K팝 전문 특성화 교육기관이다. 지난 2020년 개교 이후 두 차례 졸업생을 배출했고, 올해 5회 신입생이 입학해 교육을 받고 있다.

박병규 한국K-POP고등학교​ 교장은 수면권, 학습권 등 청소년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으면서도 다양한 K팝 관련 산업 인재가 될 수 있도록 공교육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획사는 장사꾼일 수밖에 없다. 아이돌이 안 뜨면 마치 상품처럼 용도 폐기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우리 학교는 연예인을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다. 교육은 결국 자기실현이다. 본인이 관심 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전폭적으로 도와주는 곳이 학교다. 우린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우리 학교는 아이들이 혹사 당해 아파하고 데뷔 못 해 좌절하는 곳이 아니다.”

한국K-POP고등학교의 모든 수업료는 무료다. 보컬, 작곡, 안무 등 K팝과 관련한​ 전공 과목을 선택해 배우며 일주일에 한 시간 1대1 개인 레슨을 받을 수 있다. 교과목은 학생이 자율적으로 선택한다. 물론 ​수학·영어·국어 등 정규 교육과정도 30% 이상 ​병행한다. K​팝과 관련된 방과 후 프로그램도 15개가 운영된다.

이를 위해 전문교과 교사 5명이 학교에 상주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보컬, 댄스, 랩, 미디, 연기 등을 가르치는 산학겸임교사 및 시간강사​ 50명도 아이들의 꿈을 위해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학교에는 학생들이 마음껏 연습할 수 있도록 다양한 특별실이 마련돼 있다. 개인연습실(50실), 댄스실(6실), 녹음실, 랩실(2실), 합주실(3실), 음악감상실, 작곡실, 미디실, 영상 스튜디오, 공연실습실 등의 실습 공간을 제공한다. 변성환 음악 교사는 “예전에는 학생들이 돈을 내고도 밖에서 개인 연습실을 빌리는 게 어려웠다. 이제는 학교 안에 최신 시설이 갖춰지고 편히 사용할 수 있어 학생들이 매우 만족해한다”라고 전했다.

#매년 외국 학생들과 교류, 내년엔 국제반도 개설

K-POP고등학교​는 존폐 위기에 놓인 지역의 활력소를 만들기 위해 모색되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K팝을 가르치는 고등학교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최근에는 여러 해외 학교들의 관심과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및 기획사와 협력해 매년 글로벌청소년 K팝 콘테스트도 개최하고 있다.​

특히 여름방학마다 개최하는 캠프가 해외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에는 캐나다 학생들이 방문한 데 이어 올해는 일본 학생들이 왔다. 지난 7월 29일부터 8월 1일까지 일본 시즈오카현 학생들이 기숙사에 체류하며 노래 가사로 한국어 배우기, K팝 커버 댄스 등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 체험하며 한일 문화 교류의 폭을 넓혔다. 일본 시즈오카현 고등학생인 A 양은 “BTS가 좋아 K팝 팬이 됐는데, 이번 캠프에 참가하게 돼 너무 기쁘다. 한국 친구들과 함께 춤을 추고 우정을 쌓느라 3박 4일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같이 힘들게 완성한 안무를 공연할 때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무엇보다 성취감이 느껴졌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K-POP고등학교가 자리를 잡으면서 경기도, 울산 등​ 여러 지역 학교에서 견학도 이어지고 있다. 오는 2026년에는 ​부산에도 K팝 고등학교가 문을 연다. 전라북도 새만금에도 K팝 국제학교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박병규 교장은 다른 지역에도 K팝 고등학교 같은 특성화 고등학교가 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많은 청소년이 자신의 권리를 잃지 않고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시설과 전문 인력을 꼭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K-POP고등학교의 현재 재학생 수는 100여 명이며, 2025년도 신입생 모집 인원은 국내반 40명, 국제반 20명으로 총 60명 정도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기획사 소속 연습생 수는 1170명에 이르는데, 이를 고려하면 한국K-POP고등학교의 모집 인원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아이돌 기획사와 사교육 시설이 ​몰려 있는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 자리 잡았다는 점과 모집 인원이 많지 않다는 점은 한국K-POP고등학교​의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

한국K-POP고등학교에는 태국, 카자흐스탄, 베트남 국적의 외국 학생도 소수 재학 중인데, 내년부터 국제반을 개설해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을 선발할 예정이다. ​

현재 한국K-POP고등학교​의 최대 고민은 전문교사 채용이다. 재작년 사립학교법이 바뀌면서 특성화고를 포함한 사립학교도 교사가 모두 교사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한국K-POP고등학교에겐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 춤, 노래, 작사, 작곡 등 특수 과목 분야에 정식 교사 자격을 갖춘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병규 교장은 “현재 K​팝과 관련해 교사 자격증을 주는 곳이 없다. 댄스 전공 교사를 데려오기 위해 교육대학을 찾아봐도 무용 교사뿐이다. K팝 댄스를 전문으로 한 사람 중에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우선은 전문 교사 대신 강사를 꾸준히 모집하고 있다. ​

한국K-POP고등학교 입구에는 다른 학교와 달리 문과 담벼락이 없었다. 학생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이 아니라 편하게 들어와 마음껏 공부하고 놀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실제로도 학생들은 학교를 그렇게 여기는 것 같다. K-POP고등학교의 한 학생은 “방학에도 학교에 와서 노래를 부른다. 챌린지 영상을 위해 별도로 준비된 공간을 제공하는 학교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다음 편에는 중소기획사가 살아남는 법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

전현건 기자

rimsclub@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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