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날개 먹거리와 일자리] 부의 불균형 문제는 동서양 모두 역사적 과제였다

2024-09-25

(36) ‘富益富 貧益貧’란 독초가 지구촌을 다 덮을까?

조선왕조실록에 ‘부익부빈익빈’ 3번

영조 “시골 구석구석 돈의 폐단 심각”

서양 고대사회서도 상대적 박탈감 표현

숟가락 계급론, 수 세기 동안 흘러와

공자가 살았던 때에도 ‘양극화’ 심해

“공평하게 분배되지 못함을 걱정해야”

지난 2019년 영화 ‘기생충(parasite)’이 넷플릭스를 타고 국내뿐만 아니라 지구촌에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의 실상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그대로 보여주었다.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이란 용어는 조선 시대에 유행되었던 말이다고 일본기록에 나왔다.

이를 확인하고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단어를 검색하니 3번(회)이나 나왔다. 최초는 세조(世祖) 14(1468)년 6월18일 “조세·부역에 대해 팔도 관찰사에게 유시” 내렸던 글에서 나왔다. 두 번째는 중종 5(1511)년 9월18일 “전경(典經) 유돈(柳墩)이 시경(詩經) 신공(臣工)을 강의하는(進講) 과정에 농사의 중요성과 백성의 노고를 강조” 하는 기록에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숙종(肅宗) 42(1716)년 12월24일 “기병·보병·수군의 신포(身布)는 절반을 줄여서 받아들이게 하라.”는 문장에 있다. 이때 숙종은 “옛날부터 돈이란 폐단이 있었는데(錢貨自古有弊) 다름이 아닌 오늘날 백성들 사이엔(卽今民間), 도둑 때가 날뛰고 있다(盜賊肆行). 그래서 있는 사람은 더 많이 벌고, 없는 사람은 가진 것까지 빼앗기는 실정이다(富益富 貧益貧).”했다.

영조 3(1727)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서 “시골 구석구석에까지 돈의 폐단이 얼마나 심한지? 부익부빈익빈이란 폐단이 있다니(錢豈無弊? 鄕曲間, 富益富貧益貧, 錢之弊也).”라고 국왕은 언급했다. 오늘날 용어로는 “소득의 양극화(polarization of income)” 혹은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 feeling)”이었다.

이렇게 소득의 양극화(부의 편재, 일자리 쏠림) 현상을 동양고대사회에는 오늘날처럼 i)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structural contradictions of capitalism), ii) 소득재분배의 모순(contradictions in income redistribution), iii) 경제적 약자에 대한 보호제도 미약(weak protection system for the economically weak), iv) 저소득자에 대한 사회적 복지 미흡(insufficient social welfare for low-income earner) 등의 각도에서는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팔자소관(八字所關)이나 개인 능력(個人能力)으로만 돌렸다.

동양의 빈부론(貧富論)의 핵심사상은 “부자(富者) 혹은 빈자(貧者)로 태어나지는 않았다. 모두가 자신에 의한 것이다. 부자는 열심히 일했고,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건 자연의 섭리일 뿐이다(是爲自然之理矣).”

서양 고대사회에서도 귀족(貴族)들은 은쟁반에다가 금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었다. ‘은 숟가락(silver spoon)을 입에 물고 태어났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는 표현으로 상대적 박탈감(相對的 剝奪感)을 표현했다.

세칭 숟가락 계급론(Spoon Class Theory) 이 수면 아래로 수 세기 동안 조용히 흘러왔다. 2017년에 숟가락 계급론이 우리나라에서 소득 및 재산에 따른 9계급: 즉 i) 다이아몬드 숟가락(Diamond Spoon), ii) 백금 숟가락(Platinum Spoon), iii) 황금 숟가락(Golden Spoon), iv) 은 숟가락(Silver Spoon), v) 황동 숟가락(Bronze Spoon), vi) 강철 숟가락(Steel Spoon), vii) 나무 숟가락(Wooden Spoon), viii) 마지막 흙 숟가락(Soil Spoon), ix) 먼지 묻은 흙 숟가락(Dirt Spoon)이다.

서양에서는 서기(西紀) 80년에서 90년 사이에 작성된 마태복음(Matthew: 25:29)에서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아 부유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없는 사람은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라고 예수가 한 말이 인용되어 있다. 그런데 이를 ‘부익부 빈익빈(The rich get richer, the poor get poorer)’이라고 최초로 표현한 사람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詩人)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로, 그는 1821년경 쓴 ‘시의 옹호(A Defence of Poetry, 1840)’에서 “가진 사람에게는 더욱 많이 주어질 것이고, 없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마저 빼앗긴다니.”라는 시 구절을 적었다.

그런데 ‘자본론(Das Kapital)’을 쓴 카를 마르크스(Karl Marks, 1818~1883)는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의 사회현상에 대해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는 진부(陳腐)한 주장(懶怠論)은 자본가들이 노동자의 임금을 낮춰야만 자기네들이 더 부유해질 수 있다는 굴욕화(비참화)론(theory of immiseration) 이다.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을 때까지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고 언급했다.

오늘날 ‘경제적 소득의 양극화(polarization of economic income)’는 고대역사에서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때에도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물론 현재처럼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측정하는 지니계수(Gini coefficient/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소득분배지표. 지니계수는 0에서 1사이의 수치로 표시되는데 소득분배가 완전평등한 경우가 0, 완전불평등한 경우가 1이다. 지니계수는 로렌츠곡선을 이용하여 계산할 수 있다) 혹은 조세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측정하는 RS 지수(The Reynolds- Smolensky Index/조세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이용되는 대표적인 지수는 RS(The Reynolds-Smolensky) 지수이다. 동 지수는 조세부과 전 소득과 조세부과 후 소득에 나타나는 불평등 지수의 차이를 측정하는 것이다. 즉 조세제도의 적용으로 인해 나타나는 소득불평등도의 완화를 소득 재분배 효과라 정의하고 있다)를 통해서 계측할 수 없었다.

공자(孔子, BC 551~BC 479)가 살았던 BC 5세기 당시에도 오늘날과 같이 ‘소득의 양극화(所得之兩極化)’는 심했다. 논어(論語) 계씨편(季氏篇)에서 “나라에서 땅(혹은 사람)이 적다는데 걱정을 하지 말고, 골고루 공평하게 분배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不患寡而患不均).”이라고 했다.

이런 현상을 걱정해야 하는 이유를 주자(朱子)는 주석(註釋)에서는 “공평하지 않으면 국가적 화합을 깨뜨리고, 장차 나라 안에 어떤 변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不均不和, 內變將作)” 고 했다. 송사(宋史)에서는 “나는 균등하지 못한 빈부는 역병과 같으니 이제는 그대들에게는 균등하게 하겠노라(吾疾貧富不均,今爲汝輩均之)”라고 기록하고 있다. 남송(南宋) 농민봉기(農民蜂起) 때도 “귀천을 평등하게, 빈부를 균등하게 하라(等貴賤, 均貧富)”고 외쳤다.

조선왕조실록에서 172건의 민란(民亂)기록이 나오고 있으나 원인은 대부분이 전정(田政), 군정(軍政) 및 환곡(還穀)이라는 삼정문란(三政紊亂)과 탐관오리(貪官汚吏)에 기인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부담의 불균(負擔之不均)”이었다.

글= 김도상 행정학박사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