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인터넷신문]광복 80주년을 맞아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에서 열리고 있는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24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의 거센 풍파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고려인의 언어혼을 조명하며, 신문과 한글문학 작품집 출판에 헌신한 화가들의 발자취를 되살려냈다.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메운 책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표지와 삽화다. 글자에 그림이 더해지며 책장을 여는 순간 독자를 사로잡던 예술적 흔적이 지금도 생생히 남아 있다.
이 삽화와 표지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고려인 공동체가 언어와 문화를 지켜낸 무기였다. 김형윤(1908~1994), 정태홍(1941~2011, 레닌기치 전속화가), 김스바토슬라브(1954~2007), 윤수찬, 문빅토르(국립고려극장 주임미술가, 1951~ ) 등이 그 주역이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신문과 서적의 삽화를 그리며 고려인 미술의 맥을 잇고, 문학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그들의 붓끝에서 태어난 그림은 단순한 장치가 아닌, 낯선 땅에서 언어적 정체성을 지켜낸 방패였다.
특히 살아있는 전설이 된 문빅토르 화가는 국내 귀환 후 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해 ‘문빅토르 미술관’을 운영하며, 강제이주와 잊혀진 고려인의 피어린 역사를 복원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의 작품 앞에 선 이들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열차를 떠올리고, 낯선 벌판에서 다시 일어선 고려인들의 삶을 기억한다. 또한 그의 그림은 관람객들을 향해 “우리는 낯선 황무지에서 조차 언어와 문화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고 조용히 속삭인다.
뿐만 아니라, 고려인 화가들이 남긴 삽화와 표지화는 세월이 흘러 종이가 바래고 색이 옅어져도 여전히 강렬하다. 그 안에는 글보다 더 생생한 기억, 민족 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신은 무엇으로 역사를 지키고 있는가? 당신은 무엇으로 미래 세대에게 말을 걸 것인가?” 를 조용히 묻고 있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삽화와 표지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고려인 공동체가 언어와 문화를 지키려 노력했던 발자취”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그들의 헌신이 재조명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고려방송: 안엘레나 (고려인마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