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덕수와 고건은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 관료들이다. 모두 전북출신으로 학벌과 경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이들을 보는 눈은 다르다. 특히 고향에서 그런 것 같다.
이들의 공통점부터 보자. 학력을 보면 1949년생인 한덕수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인 경기중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1938년생인 고건 역시 경기중고와 서울대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재학중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잠시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다음 경력을 보자. 한덕수는 21세 때 행정고시에 합격해 특허청장,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경제부총리, 주미(駐美)대사, 2번의 국무총리(노무현·윤석열 정부)를 거쳐 이번 윤석열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고건 역시 23세 때 행정고시에 합격 후, 37세에 최연소 전라남도 지사를 거쳐 교통부·농림식품수산부·내무부 등 3개 부처 장관을 지냈으며 국회의원과 두 번의 서울시장, 두 번의 국무총리(김영삼·노무현 정부)를 역임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대행도 맡았다. 이만큼 화려한 경력이 있을까. 질릴 정도다. 이들은 출중한 능력으로 보수정부와 진보정부를 가릴 것 없이 중용되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없지 않다. 고향에 대한 태도가 그렇고 물러설 때가 그렇다. 한덕수는 고향세탁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공직자 프로필에 서울출신으로 표기하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전북 전주출신’으로 표기했다. 그 전까지 고향을 전북으로 표기하면 일일이 정정을 요구했다는 증언도 있다. 이를 두고 영남정권에서 입신양명을 위해 고향을 숨겼다는 해석과 호남차별이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는 동정론이 나왔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로 인기를 모았던 완주출신 유인촌의 경우도 비슷하다. 반면 고건은 서울에서 태어났음에도 군산출신인 부친 고형곤 박사를 따라 전북사람으로 활동했다. 황인성 전 총리와 함께 재경전북도민회를 만들고 2대 회장으로 출향인을 묶는 가교역할을 했다.
그리고 공직에서 물러날 때의 모습도 다르다. 고건은 2007년 대선 당시 유력한 대선 주자로 거론되었으나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덕수는 윤석열 정부 2인자로 계엄과 탄핵에 책임이 있음에도 오히려 대선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이어 광주 5·18묘역을 방문,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치자 “나도 호남사람입니다”를 15번 외쳤다. 이런 과정에서 전북변호사 100명이 “고향 세탁과 새만금예산 삭감을 주도했다“며 ”도민 배신행위“라고 지적했다. ‘까마귀도 내 땅 까마귀면 반갑다’는데 왜 좀 씁쓸할까.(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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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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