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아노라'와 60회 대만 금마장 신인감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연소일기'는 각각 다른 문화적 렌즈로 사회 문제에 접근했다. '아노라'의 션 베이커 감독은 서양의 날카로운 풍자, 탁역겸 감독은 동양의 서정적 접근법으로 각각 현대 자본주의의 부조리와 가족 내부의 권력 구조라는 주제를 영화 속에 녹여냈다.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는 뉴욕을 배경으로 재벌 2세와 스트리퍼의 만남을 중심에 두며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뉴욕의 고급 클럽을 오가는 주인공 스트리퍼 아노라(미키 매디슨 분)의 시선은 사회 최상층의 권력자들과 그 뒤에 감춰진 탐욕과 부조리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아노라는 철부지 재벌 2세 이반(마크 아이델슈타인 분)충동적으로 사랑에 빠져 결혼을 진행하지만, 이반은 부모님의 반대가 이어지자 줄행랑을 쳐버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결혼을 유지하고 싶은 아노라와 혼인무효 소송을 진행시켜야 하는 이반의 부모가 고용한 3인의 소동은 자본과 권력의 민낯을 풍자적으로 해체했다.
션 베이커 감독은 돈으로 나뉘는 사회적 계급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갖고 있는 인간의 본성을 서양 영화 특유의 직설적이고 블랙 코미디적인 감각으로 전달했다. 그러면서 스트리퍼 아노라가 꿈꾸던 신데렐라 스토리를 과감하게 깨부수며 한 인간의 가치를 생각하게 만든다.
칸 영화제에서 이 작품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은 이러한 직설적 접근과 유머가 전 세계 관객에게 강한 메시지와 함께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결과다. 해외 평론가들 역시 아노라가 지닌 날카로운 풍자와 과감한 캐릭터 묘사에 대해 단순한 오락을 넘어 강렬한 사회적 성찰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연소일기'는 가정 내 폭력과 억압,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의 고통을 서정적인 시선으로 접근한다. 이 영화는 한 고등학교 교사 정선생(노진업 분) 발견한 유서를 통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며, 부모의 무관심과 인정 욕구 속에서 상처받는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낸다.
여기서 등장하는 열 살 소년 요우제(황재락 분) 이야기는 서양식 직설 대신 감수성을 담아 표현됐다. 이 영화는 폭력과 억압이라는 주제를 고발 형식이 아닌, 요우제의 이야기를 통해 어린 시절 죄책감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요우제의 동생 정 선생의 성장을 동시에 그리며 위로의 말을 함께 건넨다.
'아노라'가 직설적 풍자와 블랙 코미디로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드러내고, 사회 계층 간의 차별을 강렬하게 풍자하는 동안 '연소일기'는 가정 내에서 겪는 고통과 억압을 감성적으로 풀어내며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낸다.
두 영화는 상반된 문화적 접근 방식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현대 사회의 균열을 비춘다. 이를 통해 관객은 각자의 방식으로 공감과 해석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