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혁신의 대가가 불법 사업자 낙인이라면, 누가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2025-10-28

'혁신'은 늘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라는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명확하다. 법과 제도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기존 법령이나 제도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에 대해, 일단 '안전한 놀이터'를 열어주고 그 안에서 마음껏 실험하고 검증할 기회를 주겠다는 사회적 합의다. 이 제도는 혁신 기업에는 리스크를 감수할 용기를, 정부에게는 미래 산업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윈·윈(Win-Win) 전략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핀테크 기업 '다윈KS'가 겪은 일련의 사태는 이 샌드박스의 존재 이유, 더 나아가 정부의 혁신 기업의 육성 의지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정부를 믿고 승인받은 '놀이터'에서 뛴 대가가 '불법 사업자'라면, 과연 어떤 기업가가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의 길을 걸을 것인가?

◇승인과 낙인 사이: 한 핀테크 기업의 좌절

다윈KS는 4년간의 막대한 투자로 '크립토 ATM' 서비스를 개발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보유한 가상자산을 원화로 환전해 카드에 충전, 국내에서 편리하게 결제하도록 돕는 서비스다. 이들은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정해진 절차를 충실히 따랐다.

2020년, 유관부처(법무부·기재부·금융위)의 의견을 종합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규제 샌드박스(신속확인) 승인을 받았다. 2023년에는 인공지능(AI) 안면인식 등 고도화된 고객확인(KYC) 기술을 결합해 다시 한번 과기부의 샌드박스(임시허가)를 취득했다. 이는 명백히 정부가 '테스트해 보라'고 허락한 혁신 사업이었다.

더욱이 이들은 현행법의 공백 속에서도 업계 최고 수준의 준법 시스템을 갖추고자 노력했다. 은행 출신인 대표의 경험을 살려, 개발 초기부터 '외국환관리법'에 준하는 KYC 및 자금세탁방지(AML) 기준을 엄격히 적용했다. 또, 자산 수탁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승인을 받은 '한국디지털에셋(KODA)'과 콜드월렛 운영 계약을 맺어 서비스와 명확히 분리했다. 이는 현행법의 공백 속에서 기업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위험 관리 방안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혁신은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멈추고 말았다. FIU가 어떠한 사전 안내나 유예 기간, 혹은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를 위한 행정적 절차 안내조차 제공하지 않고 '미신고 가상자산 사업자'로 지정하면서 서비스를 전면 중단시킨 것이다. 다윈KS 측은 사업의 존폐가 걸린 사안에 대해 소명 기회나 향후 계획을 설명할 기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방적 중단 통보를 받았으며, 결국 '미신고 불법 사업자'로 규정돼 영업이 중단된 상태다.

◇부처 간 엇박자, 누구의 책임인가?

이번 사태의 핵심은 '정부 부처 간의 엇박자'와 '혁신에 대한 이중 잣대'로 이러한 모순이 혁신 기업에 얼마나 치명적인 독소로 작용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과기정통부는 혁신을 독려하며 두 차례나 샌드박스 승인을 내줬지만, 금융 당국인 FIU는 이들을 현행법의 잣대로 재단해 불법으로 규정했다. 이는 금융당국이 혁신 기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슬픈 현실이다.

FIU의 논리는 법률의 제정(특금법)에 따라 해당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를 했어야 함에도, 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FIU의 조치는 '내국인 보호'를 위해 VASP 신고를 요구했으나 따르지 않은 해외 거래소들을 제재한 기존 논리와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다윈KS를 이들과 단순하게 동일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들은 오직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며, 국내법의 테두리 안에서 샌드박스 승인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던 한국 핀테크 기업이다.

존재하지 않는 서비스였기에 관련 법규가 미비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샌드박스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샌드박스 승인 기업을 미신고 사업자와 동일 선상에 놓고 '불법' 낙인을 찍는다면, 이는 사실상 정부가 승인한 사업을 다른 정부 부처가 부정하는 자기모순이다.

이러한 행정적 부조리는 시장에 치명적인 신호를 보낸다. “정부를 믿고 혁신에 도전한 대가는 '불법 사업자'라는 낙인”이라는 메시지다. 수십억원의 투자와 수년간의 시간을 투입해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사업을 영위한 선구자에게 돌아온 것이 사업 중단과 형사 고발이라면, 과연 어떤 기업이 다시 위험을 감수하려 하겠는가.

◇혁신 생태계, 신뢰 위에 세워야 한다

진정한 혁신 생태계는 관료적 규제가 아닌 신뢰와 소통 위에서만 자랄 수 있다. 정부가 신기술을 두려워하고 예측 불가능한 규제의 칼날을 휘두른다면, 혁신가들은 불확실성의 그늘에 숨거나 아예 한국 시장을 떠날 것이다.

우리가 진정 '핀테크 강국'을 꿈꾼다면, 정부의 역할은 규제를 위한 규제가 아니라 계도와 지원이어야 한다. 혁신 기업을 잠재적 범죄자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동반자로서 소통하고 예측 가능한 제도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한 기업의 불운이 아니다. 대한민국 혁신 생태계의 미래가 걸린 시금석이다. 다윈KS가 겪은 절차적 부당함은 반드시 바로잡혀야 하며, 무엇보다 샌드박스 제도 운영에 대한 부처간 명확한 소통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가 승인한 혁신이 다른 부처에 의해 좌초되는 '혁신의 배신'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혁신 사업가들이 원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정부의 일방적 규제가 아닌, 합리적 소통과 예측가능한 제도위에서 마음 놓고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형주 (사)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이사장 hjkim555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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